13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빌립보서 4장 13절
6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어라. 때가 되면 그분이 여러분을 높이실 것이다.
베드로전서 5장 6절
통치 개념이 없이 ‘능력’이라는 단어만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울은 ‘주시는 능력’으로 자기가 하려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통치하심을 받아들였더니 어디에 거하게 하시든지간에 모두 능히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능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밖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갈구합니다. 임금이신 하나님의 통치의도를 살피지 않고 능력을 구하려는 자들은, 받은 능력은 전혀 없이, 자기 육신의 끓는 야욕의 힘을 하나님이 주신 힘이라고 오인하고 자기의 길로 나아갑니다. 감정의 고양, 욕심의 재촉의 결과인 인간적인 ‘열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급히 하나님을 떠나면서도 능력주시기만을 이기적으로 바라며 살아갑니다. 당신이 하나님나라의 통치아래에 순복하려는 마음은 없이, 그 나라의 임금에게 무엇을 요구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전쟁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탈취하러 왔다고 내놓으라고 하는 격이니, 당신은 하나님께 요청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싸움 걸러 온 적국의 사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손 아래에 굴복하는 일 없이, 자신의 요청의 방향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회개 없는 용서가 없듯, 아무리 하나님을 향하더라도 자기 뜻을 하나님께 관철해보려는 고집은 이길 수 없는 전능자와 다투기 위하여 싸움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실상입니다.
그러나 자녀의 권세를 가진 사람에게는 이렇게 행동하여도 하나님께서 그를 적국의 사신으로 보시지 않고, 불효자로 보신다는 것이 엄청난 다행입니다. 불효자로 여기신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십시오. 그러나 거기서 멈춰서는 안될 것은, 불효자에게는 평생토록 아버지의 근심으로 말미암는 슬픈 인생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임금이신 하나님을 향한 자녀가 아닌 자들의 포악은, 그들의 세상적인 형통에도 내버려두사 무서운 심판에 이르게 하시지만, 하나님을 향해 포악을 일삼는 자녀들은 영원한 심판에 이르지 않도록 그들을 생전에 무섭게 징계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슬픔이 반복된다면, 당신의 슬픔의 원천은 당신 속에 계시는 아버지의 슬픔임을 깨닫고 돌이키십시오. 자기 계획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그치고, 하나님의 계획 안에 들어가십시오. 하나님을 쥐고 휘두르려는 것보다, 그분의 손 아래에서 겸손하려는 자녀는 생전에 평안합니다.
6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아래에서 자신을 낮추어라. 때가 되면 그분이 여러분을 높이실 것이다. 7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맡겨라. 그분이 여러분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5장 6-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