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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비만

20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명예로 여겼다. 다른 사람이 세운 기초 위에 짓지 않으려 했다. 21기록된 대로 “그분에 관해 전해지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고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깨달을 것이다.”

로마서 15장 20-21절

여러분, 복음이 우리 안에 있으면서도 왜 우리가 기쁘지 않은 줄 아십니까? 우리가 복음의 성질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21나는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고 멸시한다. 너희의 축제 모임을 기뻐하지 않는다. 22너희가 나에게 번제와 곡식 제물을 바쳐도 내가 받지 않고, 살진 짐승의 화목제도 바라보지 않겠다. 23너희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치워라. 너희 수금 소리도 듣지 않겠다. 24오히려 정의가 물처럼 흐르고, 의가 끊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라.

아모스 5장 21-24절

주일 예배? 집회? 십일조? 제발 그만하십시오. 복음의 성질은 고여 있으면 안 됩니다. 복음은 계속해서 세차게 흘러야 합니다. 고인 물은 썩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사람들이, 왜 예수를 영접하고도, 구원받고도 계속 구원을 의심하고 날마다 신앙생활이 괴로운지 아십니까?

복음의 성질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비비탄총을 집에 사두셨었습니다. 저는 그 비비탄 총의 탄창에 계속해서 동네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비비탄을 끼워 넣었습니다. 탄창에 쌓이는 비비탄들을 보면서, ‘아, 이렇게 모아두면 오래도록 쏠 수 있겠구나.’ 하고 저는 속으로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쏘려고 장전할 때에 총은 망가졌습니다. 탄창에 총알을 너무 우겨넣어서 스프링이 고장 났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이 쑤셔 넣은 것입니다.

우리는 비비탄 총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계속해서 총알을 넣기만 하면, 쏘지도 못하고 망가집니다. 내가 예수님을 계속 움켜쥐려고만 하면 고여서 썩어 아무도 먹지 못하는 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체로, 그 이름에 하나님의 공의와 판단이 있습니다. 계속 그의 이름, 우리의 구원받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9내가 너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여라.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마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 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 1장 9절

복음의 성질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도 자신의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1믿음이 강한 우리는 약한 사람들의 약점을 짊어지고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아야 한다. 2우리 각 사람은 이웃을 기쁘게 하여 선을 이루고 세워 주어야 한다. 3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 기록된 대로 “주님을 모욕한 사람들의 모욕이 내게 떨어졌다.”

로마서 15장 1-3절

복음은 받아들이는 순간 나의 삶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나와 관련 없는 자, 하나님의 눈길이 있는 곳,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을 향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결코 네 가족을 사랑하라 하지 않았습니다. 집단 이기주의, 개인주의 감옥에 빠지지 마십시오.

27밖에서 네 일을 준비하고 밭에서 네게 필요한 것을 갖추어라. 그 뒤에 네 집을 세워라.

잠언 24장 27절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내가 나의 일을 근심하지 않고, 밖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복음을 흩뿌리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일들은 바깥으로부터 예비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 복음을 전파하고 듣지 못한 자들이 복음을 듣게 하는 것, 이미 복음을 접한 자들이 일어나 세상에서 외치게 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위해서 산다면 나의 일들은 내가 가꾸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주십니다.

주일 예배, 새벽 기도로 복음의 기쁨을 우겨넣기만 한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오. 다시 첫 기쁨을 찾기 위하여 목에 피가 나도록 찬양하는 우리 아이들을 보십시오. 우리가 망가뜨린 아이들입니다. 교회가 아이들에게 복음이 아닌 곰팡이와 이끼를 심어줬습니다.

복음의 긴급함을 알려줘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다음 세대는 영적 비만에 거해서는 안 됩니다.

전도에 우리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언제 전도합니까?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핑계 대지 마십시오.

교인과 아이들을 계속 신앙생활의 심연 속에 빠뜨리는 우리의 교회여, 돌이키십시오.

비만 환자가 다이어트를 시작하려 합니다. ‘어디서 운동할까? 저기 체육관을 다닐까? 식단은 어떻게 조절하지? 흠, 살 빠지면 입을 옷들을 골라볼까?’ 이렇게 생각하다가 또 피곤해져서 치킨을 시킵니다.

지금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이 비만 환자와 다름이 없습니다. 전도해야 하는데, 혹 내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흠, 내가 잘살아야 하나님을 믿지 않을까? 혹시 실수하면 어쩌지? 걱정하다가 다시 부흥강사를 초청합니다. 그는 양념치킨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그 순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당신이 전하기를 원하고 계속 기회를 보며 전파하려 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부족한 지혜와 놀라운 성령의 역사하심을 넘치게 주실 것입니다.

운동을 시작하십시오. 시작을 먼저 하십시오. 처음엔 뛰기도 힘들 것입니다. 계속하십시오. 점점 나아질 것입니다. 우리의 운동은 세상에 예수님을 외치는 것입니다. 처음엔 실수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욕할 것입니다. 당신은 잘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이해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전하면 그냥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 마음들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 공중의 마귀들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아니 저 사람 왜 저래, 우리가 예배와 헌금과 찬양 집회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줬는데 저 사람 왜 만족하지 않고 전도하는 거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당신이 복음을 깡으로 전하기 시작하는 순간 마귀들이 당황할 것입니다. 마귀들은 우리들이 평온한 신앙생활 속에서 만족하여 영혼의 배가 처지고 죽어가는 비만 돼지인 줄 모르고 살아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뚱뚱할 때의 함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누워 있으면 편안합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시작하십시오. 우리의 영적 비만을 해소하시려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가 운동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영적 몸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