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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워진 밥

차가워진 밥

12“불법이 많아져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이다.” 13“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12-13절

7의로운 사람을 위해 죽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선한 사람을 위해 용기를 내어 죽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8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로마서 5장 7-8절

8살, 6살, 2살 하나님이 제게 읽어주시려고 주신 자녀라는 책장들이 한 페이지씩 넘어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잘못할 때도 많지만, 예상 밖의 사랑을 제게 줄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인상깊은 사랑을 받을 때, 전혀 없어져버린 제 어린 날들이 문득 기억나기도 합니다.

어릴 때 엄마가 찬 밥을 주실 때가 가끔 있었습니다. 엄마가 기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지, 저는 찬밥도 맛있어요라고 말하고 정말 맛있게 먹으려 했던 장면들이 기억납니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에게 그런 기쁨을 줍니다. 바보같은 사랑만큼 불쑥 찾아오는 기쁨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이 너무 똑똑해졌습니다. 자신들을 지킨답시고, 사람을 거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소시오패스, 아스퍼거, 나르시스트같은 얌체같은 인상을 누군가에게서 받으면 마음이 화들짝 놀라 그 사람을 피하고 싶어집니다. 자신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그렇게 되겠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 속에 어떤 사랑이 주어졌는지 잊고, 스스로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행태를 봐주기 힘든 인간군상이 곰팡이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한 원인은, 훈육할 수 있는 부모의 부재입니다. 세상에 자녀를 생산할 수 있는 부부는 많지만, 훈육할 수 있는 부모는 찾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짹짹거리는 자녀들의 입에 먹이를 넣어주는 일차원적인 보육에서, 마땅히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는 경솔한 풍조가 뿌리깊어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세상이 떠드는 소리들도, 일부 소수가 타인들을 대신하여 심사숙고해주는 듯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걸러야해, 저런 사람은 걸러야해 하는 것이 일면 신중함을 돕는 좋은 이야기가 맞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이 타인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없게 사랑의 점성을 잃어버리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고 휘두르려는 사람의 심산을 아시고도, 가르치시려 하셨고 고치시려 하셨습니다. 현대에 우린 너무 빠르게 포기하고 있습니다. 피가 흥건하게 질척거리는 사랑을 재현함이 드물어진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피흘려 질척거리는 것처럼 보일만큼 사랑해주셨다면, 그 사랑을 생각하면서라도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빠른손절을 서슴없이 행하지는 않아야합니다. 모든 사람을 향하여 오래 참아주라는 말씀을 너무 멀리한체 지낸 시간들은 없었는지 되돌아봅니다.

7모든 것의 끝이 가까이 왔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절제하여 기도해라. 8무엇보다 서로 뜨겁게 사랑해라. 사랑은 수많은 죄를 덮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4장 7-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