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결심했다. 3내가 여러분 가운데 있을 때 약하고 두려워하며 크게 떨었다.
고린도전서 2장 2-3절
바울은 고린도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박히신 것 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말합니다. 뒤이어 그게 뭘 의미하는지를 부연설명 하듯이, 자신이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다고 말합니다. 왜 바울은 예수님과 그의 못박히심만 생각하며 깨어있으려 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게 되었습니까?
바울이 몇 마디 고백 한 것에 대해서 생각해야만, 우리에게서 복음이 도덕윤리로 변질하는 이유를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과 그의 못박히심만을 생각했다는 것은, 마음 속에 십자가를 그림 그리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는 절대기준, 즉 하나님의 판단기준만을 집중하며 자기주관적이고 자기본위적인 상대적 판단기준을 일체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판단기준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십자가에 근거하는지 하나님은 보십니다. 그 의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는 사랑과, 하나님의 통치에 순복하는 충성과, 그가 세우신 유일한 왕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모든 영광을 돌리는 일관적인 신실함을 위하여 성령 안에서 깨어있는지만 보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주관 하에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마음의 생각을 기반하여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의 생각을 신뢰한다는 것은, 한 인간일 뿐인 상대적인 자기 주관을 절대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즉 통치 아래에 있지 않은 인간적인 처신, 행동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하나님으로 여기는 망령된 것입니다.
복음의 일꾼이 되겠다 말하지만, 하나님의 절대기준을 길어낼 수 있는 유일한 보고인 말씀을 도외시하며, 주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가볍게 여김으로 성령안에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결국엔 자기 경험과 주관적인 생각으로 복음을 얼룩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은 당신의 도덕윤리에 갇혀 빛을 잃고, 당신은 스스로를 영도자인양 자긍하겠지만 절대자의 통치에 순복하지 않는 일꾼의 복음은 개인의 개똥철학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충성이 없는 일꾼이 되는 원인은, 주인께 여쭤보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진실로 일꾼이라면 불충성 후에 주인의 책망을 받겠지마는, 자신의 자존심을 더 귀히 여겨 주인의 책망을 감히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며, 긍휼입어 사람구실을 하게 된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항시 기억한다면, 주님 앞에서 자주 실수하더라도 곧바르게 돌이켜 충성된 일꾼으로 점점 드러나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15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다루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도록 힘써라.
디모데후서 2장 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