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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상처

하나님의 상처

17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제사는 부서진 영입니다.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부서지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시편 51편 17절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될 때를 생각해 보세요. 기쁨을 나누는 일들로 서로 사랑하게 되나요?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쁨의 순간에 맺어진 사랑은 쉽게 식습니다. 그러나 슬픔을 나누며 맺어진 사랑은 식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은 기쁨이 아주 적어도 배부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슬픔 가운데서도 배부릅니다.

사랑은 상대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도 대체할 수 있다면, 그것을 사랑이라 불러야 할까요?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취미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어떤 취미이고 싶지 않으며, 하나님도 우리에게 어떤 취미의 자리에 앉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상대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건,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것들로는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공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러저러한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만이 각각의 사람에게 독특한 유일성으로 전달됩니다. 고난을 구할 때 우리는 각자가 하나님께 유일한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연히 고난을 구하려니 미친 짓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무슨 명분에서 고난에 만족해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 말하나요?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상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도, 하나님의 상처를 드러내고 싶으신 것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세상에서 살든, 율법을 읽든, 우리는 주님이 주시려는 외적, 내적인 고난을 구하고 바라야만 합니다. 고난에는 하나님의 슬픔이 있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나누며 맺어진 사랑은, 기쁨이 없어도 배부릅니다. 슬픔 속에서도 넉넉합니다. 이생에서 해소되지 않는 슬픔이더라도, 같이 슬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함께하면 행복하다는 것이 슬픔의 역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취급을 당하는 것을 매우 슬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이시기에 우리와 같이 감정은 없으실 거야, 내가 죄를 지어도 슬프지 않으실 거야, 라고 지으신 사람들이 일관하려 하므로 하나님은 마음이 상하셨습니다.

막연한 전능자의 자리에 하나님을 따돌리려는 우리의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기록된 성경 속에 묻어있는 하나님의 피눈물을 더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기까지 했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무엇으로 하나님과 서로 사랑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아버지와 사람과의 단절을 완벽하게 재현하사,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진짜로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반드시 맛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픔을 맛보려 하나요, 아니면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들에 아직도 매료되어 있나요? 하나님이 주시려는 기쁨은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의 슬픔을 받아들일 때만 피어납니다.

죽음의 슬픔과 연합함이 없이는 기쁨의 부활과도 연합할 수 없습니다.

5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습으로 연합했다면 또한 부활과 같은 모습으로 연합할 것이다.

로마서 6장 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