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폰트 크기
보통 16px
부가 기능
TTS
자유에 대하여

자유에 대하여

17주님은 영이시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

9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 10완전한 것이 올 때 부분적인 것은 사라질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 9-10절

우리는 형식으로부터 얼만큼 자유합니까? 또한 형식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어디까지 필요합니까? 우리는 우리가 얻은 자유에 대하여 긴밀히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많은 형식적인 종교행동을, 자유를 깨닫지 못하고 의무감으로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종교행동들은 반드시 ‘자원하여’ 선택했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진 것을 두 가지만 추려봅니다.
*새벽 기도
*주일 성수

먼저 새벽기도에 대해 말씀드리면, 하루의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함으로, 우리의 하루가 하나님께 인도받을 수 있도록 문을 열게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또한 새벽기도는 성경말씀 여러 곳에서 ‘일찍이’ 찾는 자가 주님을 만날 것이라 기록되어 있기에, 그러한 말씀으로 도전할 수 있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이 주려는 의도를 벗어나, 그 형식만이 당신의 막연한 미신적 숭배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실상 우리가 어떤 시간이든지 말씀을 집중하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는 ‘진짜 새벽’이 중심에 있다면, 정해진 새벽기도는 ‘개인’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시간을 ‘새벽’ 속에서 살아가는 성도들도, 새벽기도에 참여해야할 명분 중 하나는, 아직 영적 새벽을 누리지 못하는 초보 신앙의 성도들을 이끌어주는 선배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주일 성수입니다.

23매달 초하루와 안식일마다 모든 육체가 내 앞에 와서 예배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이사야 66장 23절

우리의 주일 성수와 월삭 예배같은 것은 모두 신약의 성도들의 모습을 예고한 구약의 말씀들에 기반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일을 지키는 것은, 신약에서의 4계명 준수와 연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할 것은, 계명 준수는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사랑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모이는 것이 아니라면, 주일성수도 무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의 선배들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 유익을 위해 마련하신 ‘교회 전통’은 결국 ‘부분적인 것’입니다. 주일 성수, 새벽 기도, 십일조, 헌금 등 모든 형식적 행위는 우리 신앙의 ‘유익’을 위한 ‘건전한 수단’ 혹은 ‘사랑의 표현’이지 막연히 숭배할 ‘궁극적 목표’는 아닌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우리가 성령을 통해 자유함 속에서 자원하여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유함 속에서 자원할 기회 얻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주어진 종교행사들을, 하나님과의 교제로 나아가려는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자기 개인적인 인생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미신적 수단으로 여기며, 더 나아가서는 이런 형식적인 모든 행사를 기독교의 ‘궁극적 목표’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연습해서 도달하여 그 모양만을 자기에게 옷입히는 것입니다. 주의 영이 있는 곳이 되지 못한다면, 성경 말씀을 따라 행하는 인간적인 모든 시도는, 아담과 하와가 입은 무화과나뭇잎 치마와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7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열렸고, 자기들이 벌거벗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허리 가리개를 만들었다.

창세기 3장 7절

16“나는 이혼을 미워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사람이 자기 옷으로 폭력을 가리듯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미워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니 너희는 마음을 지키고 신의를 저버리지 마라.”

말라기 2장 16절

5경건한 모습은 갖추었지만 그 능력은 부인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라.

디모데후서 3장 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