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께, 오직 주께 제가 죄를 지었고 주의 눈앞에서 악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실 때 의로우시고 심판하실 때 깨끗하십니다.
시편 51편 4절
22그 사람들은 거기서 돌이켜 소돔으로 갔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창세기 18장 22절
죽인 사람이든, 갈라진 사람이든 화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성경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다윗은 우리야를 죽여서 우리야에게 사과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죽인 것이 아니기에 화해의 기회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그와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의 완악함을 묵묵히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은 서로 미워하게 된 자녀들의 마음을 아시기에, 그들을 너무 다그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도, 각 자녀에게 섣불리 간섭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피드백이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곧장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그의 회개가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 즉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회개를, 다윗이 사랑하는 압살롬의 죽음으로 이루셨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을 때에야, 우리야를 향하여 슬퍼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슬픔을 맛보았습니다.
사무엘하 18장 33절
아브라함은 피드백이 느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돌라오멜에게 인질로 잡혀간 롯을 구출할 기회를 주셨을 때에도, 그는 전쟁승리의 명예는 움켜쥐었지만 다시 얻은 조카를 약속의 땅으로 데려오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롯이 살고 있는 소돔의 멸망을 예고하셨을 때에도, 그는 소돔을 위해서 중보기도는 했으나 거기 살고 있는 롯의 이름조차도 입술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소돔으로 네가 가서 데려오라 말씀하실까 염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윗도 죽은 우리야와 대면할 수 없었으나, 아브라함도 쫓아낸 롯과 대면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두 자녀 모두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인생을 인도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압살롬의 죽음을,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제단에 바치라는 요구를 겪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말고도 다른 자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상 그 사랑을 깨달아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화해를 이룩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죽어버린 다윗은 제쳐두고, 아브라함은 갈등의 상대자가 살아 있어도 화해하지 못한 것을 봅니다. 롯이 살고 있는 소돔에 멸망을 배달하는 천사 둘이 떠나는 중에도, 그들을 따라가서 롯을 구출할 적극적인 모습은 아브라함에게 없었습니다. 그는 그저 남아계신 분 앞에 그대로 섰습니다. 롯은 그 멸망 아래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롯을 향해서 아브라함은 애증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조카로서 매우 사랑하여 고향으로부터 데리고 왔으나, 롯은 삼촌이 준 은혜를 알아주지 않은 것만 같이 삼촌의 일꾼들과 자신의 일꾼들이 싸웠을 때 적극적으로 죄송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나이도 많고, 보는 눈도 많고 해서 체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젊은 조카가 어른을 대항하는 것처럼 여겨져서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며, 쉽게 손 내밀면 우습게 보일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에게 롯은 사랑하면서도 사랑을 표현할 수 없는 미움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애증의 상대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아주 원수 맺는 일은 그렇게 허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애증의 상대로 머물도록 둬버린 롯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 갈등의 상대가 재앙을 만나더라도, 우리는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용기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그저 그대로 서있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갈등의 상대자를 위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사랑을 먼저 받았다면 먼저 받은 자에게 하나님은 기대하십니다…
7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여라.
로마서 15장 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