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그분의 기초가 거룩한 산들 위에 있다. 2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더 사랑하신다.
시편 87편 1-2절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여인과 했던 대화 중에는, 시편 87편을 모티브로 했던 대답들이 있었습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이 어디서 예배를 드려야 되느냐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 산지에서도, 저 예루살렘에서도 아니요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하셨습니다. 그 뒤에 말씀하시기를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의 예배는 맥락상 장소 제약이 없는 시온의 문들을 모티브한 것입니다.
시편 전체를 한 권의 책으로 봤을 때, 시편에서의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냅니다. 또한, ‘문’이라는 이미지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출입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편 24편에서도
9성문들아, 머리를 들어라. 오래된 문들아, 들어 올려라. 영광의 왕께서 들어가신다.
시편 24편 9절
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시편 121편에서도
8여호와께서 네가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킨다.
시편 121편 8절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나왔던 영과 진리의 예배는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께 출입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 말씀하시기를,
9“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해 들어가면 구원받고 드나들며 풀을 찾을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9절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출입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요한계시록에서도 말씀하시기를
20보아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시편과 요한복음, 요한계시록을 다 아울러 ‘출입’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 할 때에, 온종일 주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또는, 내가 평소에 사는 것이 정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인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아우르고 있는 ‘출입’의 예배는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시간을 우리 삶 속에서 구별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어떤 믿음의 선진이 자기 삶 속에서 하나님께 출입하는 삶을 위하여 시간을 구별하였었습니까? 다니엘이 그러하였습니다.
다니엘 6장 10절
하나님과의 시간을 구별해두는 훈련은, 훈련하는 사람을 경건하게 합니다. 바울도 우리에게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기 때문에 경건을 위하여 연단하여야 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출입하는 삶을 통하여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34날마다 내 문 곁에서 깨어 있고 내 문설주를 지키며 내 말을 듣는 사람은 복이 있다.
잠언 8장 3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