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나단이 다윗에게 말했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사울의 손에서 왕을 구해 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무엘하 12장 7절
복음의 전달자 나단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다윗이 악랄한 죄인인 것을 알려준 것은, 선지자의 복음이었습니다. 전하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으로 모두 다윗과 같아졌다면, 서로에게 나단과 같은 친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쓴소리를 하는 자가 너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설탕과 같은 아첨으로, 주님의 보혈을 찐덕이게 하고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정의와 공의이신 주님의 보혈이 찐덕여졌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은 죄 가운데서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서 죄로 인하여 아파하기를 잊었습니다. 왜 죄가 끊어지지 않는지 아십니까? 보고도 넘기고, 서로 경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진심어린 통책이 사랑이라 그랬습니다. 아첨은 독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음침한 곳에 숨어 죄를 탐닉하면서, 점점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우리가 예수를 죽인 죄인인줄을 잊어가는지도 모릅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죽였습니까? 다윗은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달받은 후, 아직 스스로가 예수를 죽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살인자이면서 서로 옳다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나단이 누구에게 살인자임을 알려주고 있습니까? 바로 오늘의 우리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살인자임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몸에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죽일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에게 죄 씻는 피를 흘려주시려고 다가오신 것입니다.
세상의 법정에서도 아니요, 우리를 영원히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는 사형수였습니다. ‘내가 예수를 죽였습니다’ 인정하는 사형수마다 하나님은 아들을 삼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선함에 대한 우리의 철저한 불가능을 전달받지 못하였다면, 아직도 우리는 사형수였다는 사실과 그것에서 한량없는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람끼리의 인정이, 무엇이 믿는것인지 조차 알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복음을 통하여 예수께서 나를 위해서 죽어주셨다는 사실이 믿어지는 것은, 내가 예수를 죽였다는 사실이 믿어질 때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증거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점점 복음이 아첨으로 말미암아 찐덕거려져서, 많은 성도들은 보혈을 덕지덕지 붙인 채로 교회 바깥으로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서로가 마음에 선함이 없음을 알지 못하기에, 서로의 죄성을 경계해주는 모습이 전혀 없습니다. 반쯤 벗고 다니는 자매들은, 복음이 제시하는 가치관을 잃은지 오래입니다. 우리가 서로 선한 줄 알고, 서로를 얼마나 잘 믿는지 모릅니다. 시기하며, 질투하며, 악한 욕심을 서로 드러내어도, 서로 경계할 줄을 모릅니다. 언제쯤 우리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겠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옛 것을 다시 찾으십니다. 외인에게서 ‘그리스도인’이라 인정받았던 그 날이 지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음을 짊어졌다면, 우리에게서 드러나는 생명이 이런 모습들이 아닐 것입니다. 성령은 바람에 비유하지 않습니까? 자매들은 통풍이 잘되는 옷을 입으시고, 가릴건 가리십시오. 성령의 불로는 우리들의 악한 탐욕을 태우기를 기도합니다.
6친구의 상처는 신실함에서 오지만 원수의 입맞춤은 많아도 속인다.
잠언 27장 6절
12형제들아,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든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악한 불신의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라. 13오늘이라고 부르는 동안 날마다 서로 권면하라. 죄의 속임수로 완고해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하려는 것이다.
히브리서 3장 12-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