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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과 부들

버들과 부들

버들의 꽃말은 솔직, 부들의 꽃말은 순종입니다. 우리는 둘 중 한 종류의 믿음에만 거할 수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애석하게도, 기독교인 모두가 믿음의 사람은 아닙니다. 심지어 사역자도 모두가 믿음의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모두가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믿는다는 입장을 자처하는데,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을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습니다.

버들과 부들처럼 주님이 주신 믿음과 스스로 자아내는 믿음의 차이는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당사자가 생각과 선택의 주체인지 아닌지에 달려 있습니다. 본인이 생각과 결정의 주체로 살아간다면 그는 성경이 말하는 믿음과는 다른, 순종이 아닌 솔직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자기 생각을 거절하고 아버지의 생각을 수납하게 하는, 결정권을 아버지께 드리는 순종의 자녀가 되는 새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하려는 믿음은 명예를 도모합니다. 그러나 순종의 믿음은 명예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은혜로 자녀가 되었을 때 이미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왕족으로 보이기 위해서 인위적인 열심을 자아낼 필요가 없습니다. 자녀가 된 자는 이미 주어진 명예를 다시 도모할 필요가 없으나, 위로부터 받은 명예와 권세가 없는 자는 기독교인을 자처하면서도 인위적으로 명예를 열망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은혜로 의인 된 자와 대조되는 교만의 인물은 인위적으로 명예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자기에게로 모으느라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국은 조롱과 속담거리가 되어, 열망하였던 명예가 아니라 당혹스러운 수치로 옷 입는 것입니다.

자녀가 된 자에게는 줄로 재어 주신 구역에서 아버지가 보내 주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욕심으로 야욕적 명예를 도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3땅에 있는 거룩한 사람들, 그들은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들을 기뻐합니다. 4다른 신을 좇는 사람들은 고통이 많아질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피를 부어 바치는 제사를 드리지 않고, 제 입술로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겠습니다.

시편 16편 3-4절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보내 주신 자들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존중히 여길 줄 압니다. 즐거움으로 인격적으로 대하고, 성도를 건축이나 여러 캠페인의 수단으로 여길 필요가 없는 삶을 주님께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잔인한 자, 강포를 행하는 자, 포학한 자는 타인의 피를 흘리며 스스로도 하염없는 고통 속에서 바다 같은 슬픔에 잠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