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그 표,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숫자를 가진 사람 외에는 아무도 사고팔 수 없게 했다. 18여기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짐승의 숫자를 계산해 보아라. 그것은 사람의 숫자이며 그 숫자는 666이다.
요한계시록 13장 17-18절
세상에서의 인간관계는 결국 이해득실을 따지는 거래관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의 근원, 필요의 근원, 삶의 근원을 채워주시는 참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생존 경쟁 속에서 서로를 이용하며 살아갑니다. 겉으로는 화목한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정략적 화목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인격적 화목이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려면, 각자의 만족의 기준이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만족의 기준을 피조물에 두고, 자신에게 주어진 영광을 잃어버린 채 먹고 마시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결국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666은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맥락을 벗어나 두려움과 미신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666은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하시는 일곱째 날의 안식(7)에 도달하지 못한 실패를 상징할 뿐입니다.
하나님이 만족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여섯째 날에 만들어진 피조세계에 만족의 기준을 두고 그것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영적 상태를 보여주는 숫자입니다.
시편 49편 20절
그렇다면 어떤 이들은 묻습니다.
“666을 이마에, 손에 쓴다는 것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마는 세계관·가치관·사고방식,
손은 행동·선택·삶의 실천을 상징합니다.
즉, 세상은 세상적 가치관을 가진 자들만 거래관계에 참여시킨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들은 그들의 “매매”, 곧 이해관계 중심의 인간관계에 끼워주지 않습니다.
19너희가 세상에 속했다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내가 세상에서 너희를 선택했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
요한복음 15장 19절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에게 사랑받습니다.
거짓 친절, 가장된 화목, 거래적 인간관계 속으로 기꺼이 초대받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악하다 증언하신 주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참된 인격적 사랑을 누리게 됩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세상은 당신의 상품적 가치가 떨어지면 곧바로 관계를 끊어버릴 것입니다. 세상은 재물과 인간의 목숨을 동일하게 “거래 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차갑고 잔혹한 체계입니다.
1유월절 전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갈 때가 왔다는 것을 아셨다.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끝까지 사랑하셨다.
요한복음 13장 1절
세상이 주는 거래관계가 아닌, 아버지께 속한 끝까지 사랑하시는 관계만이 우리를 참으로 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