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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자

8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이집트 위에 일어났다. 9그가 자기 백성에게 말했다. “보아라,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백성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다. 10자, 우리가 그들에게 지혜롭게 대처하자.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더 많아져서, 전쟁이 일어날 때 우리의 적들과 합세하고 우리와 싸운 뒤 이 땅에서 올라가 버릴 것이다.”

출애굽기 1장 8-10절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류가 의존하는 원동력은 ‘죄’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류의 대표격입니다. 오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에게서 우리는 죄가 사람을 어떻게 파멸로 인도하는지를 보게 됩니다. 죄는 사람의 마음에 욕심을 심어, 욕심과 놀아나는 사람이 스스로 멸망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의 애굽을 다스리는 왕은 있지도 않은 일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더 많기 때문에 전쟁 시에 애굽의 대적과 합하여 싸우고 애굽에서 나갈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은 단지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에 근거를 둡니다.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죄는 사람이 타인이 잘되는 것을 좋게 보지 못하는 욕심에 빠지게 만듭니다. 욕심은 자신에게 악을 행한 것이 없음에도 ‘나중에는 악을 행할지도 몰라’라는 근거 없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근거 없는 생각을 확신하며 남의 것을 착취하고 멸망시키려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죄는 사람의 마음에 욕심을 이루어 마귀와 같이 타인을 해하도록 스스로 속게 만듭니다.

스스로 속은 애굽의 왕은 이스라엘을 학대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게 실제로 악을 행하지 않았으나, 마치 당하지 않은 해를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학대하는 악한 일을 자행하는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할까 하노라”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와 싸울까 하노라’,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이렇게 스스로 속았던 사람이 앞서 누가 있었나요? 선악과를 먹기 전에 마귀에게 대답했던 하와입니다.

3그러나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그러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셨다.”

창세기 3장 3절

뱀이 하와를 속이는 방법도 단순했습니다. 단지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와는 귀를 기울였고, 하나님이 마치 숨긴 의도가 있어 못 먹게 하신 것처럼 뱀이 말할 때 욕심이 자극됨으로써 선악과를 삼켰습니다. 뱀의 말을 듣고서는 근거 없이 그 나무를 좋게 여겼습니다.

6여자가 보니 그 나무는 먹기에 좋아 보였고, 보기에도 탐스러웠으며, 지혜롭게 해 줄 만큼 탐나는 나무였다. 여자는 그 열매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던 남편에게도 주었다. 남편도 먹었다.

창세기 3장 6절

마귀가 욕심을 자극하여 선택하게 하는 ‘죄’는 아주 단순합니다. ‘거짓’, 즉 마귀의 생각에 기초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원의 성취를 자신의 행동에 결부시키는 사고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애굽의 왕도 이스라엘 자손의 숫자를 볼 때 마음의 욕심이 자극되었습니다. 그가 요셉의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근거 없는 막연한 거짓된 생각에 두려워하지 않고 분별하여 거짓을 떨쳐낼 수 있었겠으나, 요셉을 모르는 그는 하나님도 몰랐기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왕의 자리에서 스스로 두려워하였습니다.

이처럼 출애굽기의 시작에서는 사람들이 한 번쯤 꼭 오르고 싶어 하는 왕의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 마음에 공허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애굽 왕과 같이 죄의 속임수에 빠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멸망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근거 없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마귀와 같이 타인을 망하게 함으로써 자기 욕심을 해소하게 만듭니다. 애굽 왕의 행동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자기 뜻대로 소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모든 사람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위하여 타인을 잔인하게 소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는 반드시 죄가 주는 생각으로 생각하게 되며, 그것은 근거 없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그분의 도우심을 얻지 못하고,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손잡고 멸망의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런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시려고 자기 아들을 주셨습니다.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는 멸망,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죄의 속임수에 이끌려 행동하는 삶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우리 속에 뿌리 내린 죄를 멸하시려고 자기 아들을 ‘죄’로 삼아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아들은 죽고 다시 사셨는데, 그를 믿는 자마다 이전의 자신은 죽고 예수의 생명으로 다시 살아남으로써, 이제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애굽 왕과 같이 이웃을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6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하나뿐인 아들을 주셨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 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