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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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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아테네 사람들과 그곳에 사는 외국인들은 새로운 것을 말하거나 듣는 일 외에는 시간을 쓰지 않았다.

사도행전 17장 21절

바울이 아테네에서 선교하던 당시, 그들의 모습은 위의 말씀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일 외에는 다른 데에 시간을 쓰지 않았습니다. 배우고 사색하는 데에 몰두하다 보면, 지식과 실제 삶 사이의 간극을 직면할 틈조차 없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살아가는 모습 사이의 괴리는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많은 찬송이 우리의 결단이나 고백이 아니라, 그저 흥겨운 멜로디로 소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배우고 들은 것은 반드시 성실한 부담을 동반해야 합니다. 그것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직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많은 배움의 자리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실제적인 삶으로 나아가도록 동기를 부여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시청자와 청취자의 자리에 머물게 만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명설교란, 듣기만 해도 마치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설교일 때가 많습니다. 들은 대로 살아가려는 부담도, 경각심도 없는데, 단지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 버립니다.

성경에는 말하기만 하는 신앙, 듣기만 하는 신앙, 읽기만 하는 신앙, 쓰기만 하는 신앙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는 말하기 중심, 듣기 중심, 읽기 중심, 쓰기 중심의 신앙이 만연해 있습니다. 알아가는 만큼 살아내고자 하는 설렘과 긴장감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사랑이 식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도 혼인증명서를 얻기 위해 결혼하지 않으며, 웨딩사진을 찍기 위해 결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혼인했다는 것은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사랑이 식으면 말씀과 설교가 주는 부담과 경각심을 재빨리 지워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덜 만나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식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원하던 목적을 이미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만족해 버렸고,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치 상대에게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도 관계의 분위기만 즐기려는 미숙한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께 썸은 타되, 동행과 순종은 피하려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이 능숙해지고 세련되어질수록 오히려 더 슬퍼하십니다. 처음처럼 떨리는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던 모습을 그리워하십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순종하여 떠났던 아브라함의 떨림을 기억하시고, 부르실 때마다 아버지의 손을 덥석 잡고 따르던 다윗의 순수함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책과 공부로만 알아가는 교양의 대상이 아니라, 말씀에 반응하고 순종할 때 인격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아버지이십니다.

12내 아들아, 이것을 명심하여라. 책을 많이 만드는 일에는 끝이 없고, 많은 연구는 몸을 지치게 한다. 13결론은 이렇다. 모든 말을 들었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켜라.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다. 14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숨겨진 일을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심판으로 가져갈 것이다.

전도서 12장 12-1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