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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

신비주의

19벳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백성 가운데 50,070명을 치셨다. 백성이 큰 슬픔에 빠졌는데, 여호와께서 백성을 크게 치셨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6장 19절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과도한 호기심이 그들을 삼키려고 마음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호기심의 근저엔 욕심이 있습니다. 보지 못했던 것, 되지 못했던 것, 갖지 못했던 것에 대한 갈증입니다. 신비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갈증은 건강한 욕구가 아니라, 우리를 해하는 유혹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하나님과의 교제보다, 자신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인식에 하나님이란 존재에 대한 막연한 상상들을 투영하는 것입니다. 신비주의는 주객이 전도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만들어내보려고 하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신비를 부정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신비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한한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을 담아낼 수는 없기 때문에, 건강한 신비의 영역을 말씀으로 재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양처럼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라는 사랑의 신비만을 누려야 합니다.

욕심이 주는 상상, 더 보기만 한다면 더 알기만 한다면 더 갖기만 한다면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라는 철저한 광기, 그것은 죄가 주는 속임입니다. 마치 방사능실험으로 항상 돌연변이가 나왔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자기 상상과 호기심에 자극받아 방사능에 피폭되기를 자처하여 긍정적인 변화를 소망하는 광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뢰가 우리 마음에 하나씩 새겨지기를 바라시는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나 신비를 향한 과도하고 불건전한 갈망은, 우리로 과도한 일탈과 불안정한 마음을 조장하여 하나님의 성품에대한 신뢰가 아닌, 하나님의 초월성에 대한 기괴한 경외심만을 가지고 정신을 놓고 살도록 만들 것입니다.

22“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표징과 기적을 보여 할 수만 있다면 선택된 사람들까지 속일 것이다.” 23“그러므로 너희는 조심하여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해 두었다.”

마가복음 13장 22-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