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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확신

가벼운 확신

20어리석은 사람의 교사이고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확신한다. 율법 안에 지식과 진리의 형식이 있기 때문이다.

로마서 2장 20절

율법이 주려는 바는 인간중심적인 확신이 아닙니다. 율법은 하나님과 우리를 구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사람과 사람간에 구별점을 두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같이 심판을 견디지 못할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모든 성경말씀을 인간적인 기준으로 삼는 인간중심의 종교적 확신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말씀에 대한 해석의 원천은 오직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힘입어 얻어지는 성령님께 있습니다. 주님은 각자에게 성령님의 내주를 기다리게 하시는 임의적인 시간을 요구하십니다. 이것은 마음의 왕을 바꾸는 필수절차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령을 통하여 성경을 대하지 않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이것 저것을 종교적으로 대합니다. 신앙은 의지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말씀의 요구를 따라 순서에 맞게 수동적인 자세를 겸손히 가지려는 것이지만, 종교는 인간쪽에서 하나님을 만나보려고 부자연스러운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이 부자연스러운 열심이, 하나님 없이 성경을 읽으며, 성경이 만나게 해주려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도 스스로 만들어낸 우상들을 하나님이라 부르게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힘입어 하나님의 구원을 확인하려면, 모든 인위를 배제하는 자기부인이 전제되어야만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위적인 생각과 행동을 총동원해서 하나님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고 스스로 믿다가 많은 사람과 손을 잡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가벼운 확신으로 멸망이 정해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정말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셔서 생기는 확실한 믿음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안전하며 얼마나 중요합니까? 나의 구원이 인간적인 확신인지, 아니면 하나님과 진정으로 맺어진 언약의 확실한 관계인지 신중하지 않으려는 것은, 성경이 소개하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실상 진중한 관심이 손톱만큼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직 예수를 힘입는 단독자로서, 그 누구도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주관치 못하게 하는 성경의 교훈을 따라 자신의 믿음을 신중하게 시험해보십시오. 내 믿음이 진정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인정과 존귀히여김을 경험케하는지를 확인하려는 절차를 가지십시오. 예수님을 믿는다는 스스로의 생각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의 결말은, 어느 누구도 탓할 수 없고 후회할 기회도 없는 영원한 멸망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까운 아내도 남편도 부모도 자식도 이 은밀한 믿음에 있어 의지할 대상이 아니란 것을 직시하여, 우리 주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인지 확인하려고 신중하려는 자마다 하나님은 후대하실 것입니다. 그런 신중함에 거해보지 않으려는 자마다 사람들과 손을잡고 예수님을 헐값에 매도하여 십자가에 못박아놓고 살아가는 살인자로 심판받을 것입니다. 영원토록 이를 갈며 마귀가 받을 형벌을 자신이 받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차분히 생각해 보십시오.

44“너희가 서로에게서 영광을 받으면서 유일하신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광은 찾지 않으니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요한복음 5장 4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