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 형식이 올바르지 않습니다.3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가난한 사람은 곡식을 남기지 않고 쓸어 버리는 폭우와 같다.
잠언 28장 3절
하나님은 은혜를 주실 때, 우리로 하나님의 판단을 인정하기를 바라십니다. 용서를 구해야 하는 죄인이, 용서에 따라오는 편리를 위하여 용서받기를 원하지 않는데도 용서를 구하는 사람인 척 꾸며내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겸손을 가장합니다. 만일 누가 도움을 주려 하면, 도움받는 낮은 위치에 처하고 싶지는 않으나, 상대가 주려는 도움은 받고 싶기에 도움받는 낮은 태도를 임시로 가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한 것 같은 사람의 가식과 가증스러움을 처음부터 분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동행하심을 힘입어 진심으로 도와줄 뿐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양의 탈을 임시로 쓴 자라면, 시간이 지나서 가식과 가증은 숨길 수 없었던 것을 숨기고 있었던 것처럼 드러납니다. 늑대는 양의 탈을 썼더라도 기침 소리를 숨길 수 없습니다. 양의 가죽을 뒤덮었더라도 고기를 먹고 싸대는 똥 냄새를 숨길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가식과 가증스러움을 숨기고 다가오는 자들에게, 왜 도움을 주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런 점에서 주님과 동행했던 그 시간들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실족하거나 낙심하는 이유는, 주님의 동행하심은 반드시 ‘우리 보기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성경적이지 않은 미신에서 비롯됩니다. 기도로 준비하며 주님께 확답받은 일을 하였더라도, 주님의 마음에 부합한 행동을 하였더라도, 결과는 반드시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미신입니다.
내적인 결과는 우리가 제대로 깨닫기만 한다면 언제나 긍정적입니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배은망덕이 드러나는 사람들을 향한 주님의 요청에 순종하는 길에서, 정말 주님께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하셨다는 것이 믿어지는 신뢰가 두터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전달했다면, 사랑의 관계에 있어서는 받는 자가 물질적으로는 이익을 본 것 같지만, 주는 자가 진정 주님을 알아가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외적인 결과가 긍정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신앙생활은 심히 요동하게 됩니다. 신앙생활 컨디션의 상승세와 하락세가 가시적인 결과에 의해서 뒤틀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철필로 피가 나도록 새겨야만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면 외적인 결과가 언제나 긍정적이길 바라는 마음은, 아직 우상숭배자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보물 있는 곳에 마음을 두십시오. 그러면 실족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셨던 주님의 지혜로움과 순결함을 본받으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던 아버지를 향한 주님의 충성을 사랑하는 아내를 안아주듯 품으십시오. 그러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5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요한일서 5장 5절
17우리의 가벼운 환난은 영원하고 훨씬 더 큰 영광을 이루어 낸다. 18우리가 보는 것을 바라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본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고린도후서 4장 17-1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