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6장 4절
초대교회에서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구제 문제가 있었습니다. 매일의 구제에 헬라파 유대인들이 배제되므로 헬라파 사람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식사 배식을 하는데 두 그룹 중 한 그룹이 제대로 배식받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사도들의 처방은 기도와 말씀에 더욱 전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의 사도들의 모습은,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다시 예수를 바라보는 모습이었습니다. 인생의 문제와 난처한 상황들은 우리들의 시선을 쉽게 앗아갑니다. 말씀과 기도가 없이는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키기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심지가 주를 향하여 견고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교회의 문제에 대하여, 문제에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닌 기도와 말씀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문제를 위하여는 집사를 뽑았는데,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기로 결단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교회 사람들을 통하여 스데반을 뽑으셨습니다. 교회의 자질구레한 문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보시는 문제를 해결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시선은 교인들의 균등한 구제 문제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선은 다른 문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지시는 스데반의 모습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만 몸집이 커지는 초대교회를, 스데반을 통해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흩으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초대교회 사도들의 말씀에 대한 부족한 이해를 돕는 도화선이었습니다.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의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전도에만 전념했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이 순교하기 전에 했던 설교는, 그런 초대교회의 모습을 뒤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온 땅의 하나님이시므로 이방인에게도 영광 받으실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이해한 하나님의 율례는, 하나님을 사랑함과 열방을 사랑함이었습니다.
47“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집을 지은 사람은 솔로몬이었다.” 48“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는 사람이 만든 건물 안에 살지 않으신다. 예언자가 말한 것처럼,” 49“하늘은 내 왕좌이고 땅은 내 발판이다. 너희가 나를 위해 어떤 집을 짓겠느냐? 내가 쉴 곳이 어디냐?” 50“내 손이 이 모든 것을 만들지 않았느냐?”
사도행전 7장 47-50절
스데반의 설교는 성령의 운행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의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나안에서 요셉을 통해 애굽으로, 애굽에서 모세가 미디안으로, 미디안에서 다시 애굽으로, 애굽에서 광야로, 광야에서 애굽으로 돌이키려는 이스라엘을 혼내사 다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만든 성전에도 하나님은 머무르시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록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자기들만 선택받았다는 마음에 사로잡혀 성전 중심의 종교적 열심에 하나님을 가두려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설교하던 당시의 교회나, 유대교나 그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교도 성전 중심이었고, 교회도 예루살렘 중심으로 비대해지기만 했던 것입니다.
교회의 작은 문제를 시작으로,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겠다는 사도들의 결단을 일으키사, 스데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초대교회를 이방으로 흩으셔서 그들을 사용하여 전도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도들은 이방 전도에 대하여 전혀 무지했지만, 그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기로 결단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바로잡아주시는 상황과 말씀들을 통해서 이방인 전도에 대하여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문제가 발생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로 기도와 말씀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와 말씀을 붙잡으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문제를 해결하실 때에 그것을 우리로 알아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와 상황 가운데서나 기도와 말씀으로 돌아가기를 힘쓰고, 우리의 문제보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유념해야 합니다.
21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지만 여호와의 뜻만이 이루어진다.
잠언 19장 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