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젊은 사람들아, 장로들에게 복종해라. 여러분 모두 서로를 섬길 때 겸손을 옷처럼 입어라.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시지만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
베드로전서 5장 5절
교회에 있는 목사님들은 ‘장로’입니다. 성경에서는 목사와 같이 교회의 중요한 일꾼들을 뽑는 기준이 있습니다.
- 책망할 것이 없으며
-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며
-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 구타하지 아니하며
-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케 하며
- 새로 입교한 사람이 아니어야 하며
-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여야 하며
-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며
-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여야 하며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해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교회가 큰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이들을 세울 때에 전혀 시험하지 않고, 성경적인 판별 기준을 갖다 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성경적인 판별 기준을 갖다 대지 않는지 아십니까? 신학교에 나오고, 안수받아, 자격증처럼 ‘목사님’이라는 꼬리표만 달리면, 무조건 신뢰해도 될만한 사람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일반 교인들의 교인의식이 너무나도 낮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민주주의가 나왔다고는 하나, 교회에 대한 주인의식이 각자에게 전혀 없습니다. 이는, 더러운 양심으로 세움받은 목사라는 많은 장로들이, 주님을 자신의 주인 삼지 않았기에 교회에 말씀이 살아 숨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근심케, 억누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보다 교인들을 두려워하거나, 주님보다 자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높이지 않는 이런 태도가, 성령충만의 신앙으로 이끄는 말씀이 아니라, 개인적인 카리스마로 일시적인 감정고양을 은혜처럼 여기게 하는 웅변이 교회에 흐르게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목사’라는 장로를, 그는 학교도 나왔고 안수도 받았으니 ‘교회의 전문가’일거라고 믿어버린 것도 문제이지만, 목사라는 장로 자신이 자신의 직분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와 책임감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더더욱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물론 많은 직분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을 때’ 많은 시간과 주님의 섭리 가운데 세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 그대로 다시 직분의 기준에 대입했을 때, 교회를 맡겨서는 결코 안되는 ‘삯군’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말은 세상에서만 있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생활은, 직분자로 세워지기만 하면 수많은 노골적인 죄의 면죄부가 됩니다. 목사가 지은 죄의 책임은 90%할인 받습니다. 그러나 전도사와 같은 찌꺼기 교인들이 지은 죄의 책임은, 90%할증이 붙습니다. 교회는 거짓된 추와 공정하지 못한 저울이 되어 들어오는 사람마다 발골을 하여 고기만 가져가고 뼈는 내버립니다.
어디에 주님을 향한 신중함이 있으며, 교회의 어떤 사랑에 주님과 함께하는 동행이 있습니까? 물론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지만, 성경이 말하는 기준에 부합하려는 방향성이라도 있어야, 주님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들지 않겠습니까? 한 입으로 두 말만 하면 좋은데, 한 입으로 열 가지의 다른 말을 하는 지독한 뱀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잘 읽어서, 땅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간절히 기도하면, 많은 교회의 뱀들을 잡아주실 것입니다.
16그러므로 회개해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곧 너에게 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칼로 그들과 싸우겠다.
요한계시록 2장 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