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제 마음이 무너질 때 땅끝에서 주님을 부릅니다. 제 힘보다 높은 바위로 저를 인도해 주십시오.
시편 61편 2절
높은 바위로 인도해 달라고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냥 높은 바위가 아닌, ‘나보다’ 높은 바위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 시선이나 시야가 좁아져요. 화가 나서 흥분할 때에도 ‘눈앞에 뵈는 것이 없다’라고 말하지요.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한다고 해도 그것은 명확한 답이 될 수 없어요. 높은 바위에 데려가 달라는 것은, 다른 시각을 구하는 것이에요.
높은 바위로 인도해 달라는 말씀 뒤에, 시편 기자는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이십니다'(3절)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것은 높은 바위에 대한 부연 설명이라고 할 수 있지요. 바위는 주님이시고, 그 주님이 피난처이자 망대라는 거예요. 망대가 무엇일까요? 적들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 볼 수 있는 전망탑이에요. 내 시야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기를 원하는 것이랍니다.
보통 ‘분별’은 나의 눈으로 보는 것에 대해 말해요. 그러나 이 ‘높은 바위’로 인도하시는 주님은, 우리가 알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에 대해 일련의 모략이나 전략을 주시는 분이세요. 내 눈이 닿지 않는 곳까지 살피시는 분이, 내게 속삭여 주시는 것이지요. ‘이 길이 바른 길이니라.’ 우리는 이런 은밀한 인도하심을 신뢰하기를 바라나요? 아니면 의지할 사람들을 찾기에 급급한가요?
다윗이 사울을 피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은 바위에 두셨어요. 많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시야를 공유하셨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지요. 시편 기자는 시편 60편과 108편에서 ‘사람의 구원이 헛되다’라고 고백해요. 선지서에서도 사람을 신뢰하지 말라고 언급해요. 잠언의 말씀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잠언 1장 33절)라고 말씀하셔요.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힘입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의지하는 데 발이 더 빠르기 때문이에요. 하나님과 작은 교제조차 시작하지도, 바라지도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주님과 마음을 공유하기 시작한다면, 주님은 우리를 높은 바위로 인도하실 거예요. 고난 중에도, 환난 가운데서도, 재앙이 아닌 신뢰하고 의지할 만한 소망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5고난의 날에 그분이 저를 자기 초막 안에 숨기시고 자기 장막의 은밀한 곳에 감추시며 바위 위에 저를 높이실 것입니다.
시편 27편 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