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1장 10절
그리스도인의 순종에 대한 갈망이 사람들에게 받는 오해는, 근본주의자나 율법주의자, 즉 행위구원자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부가 신랑의 음성에 순종함은, 사랑에 의한 순종이지 두려움에 의한 순종이 아닙니다. 기다리는 신부에게서 느껴지는 두려움과 떨림은, 너무 설레여서 생기는 그런 것입니다.
신랑에게 어떻게 하면 최고로 아름답게 보일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은, 구원을 못 받을까봐 하는 두려움이 아닙니다. 신랑이신 예수님은 신부가 단장하지 않아도 사랑스럽지만, 신부가 신랑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순종의 보석으로 단장시키시는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순종의 무게를 느낌이, 마치 여자가 수많은 보석을 치장하고도 아름다움에 대한 기쁨 때문에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단장하는 일생 유일의 마음과 태도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어떤 사람의 눈치도 볼 필요를 못 느끼는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예수님을 향한 부드러운 신부의 마음은, 논리적이지 않고 지극히 은밀하기에 제3자들은 그것을 해석할 수 없습니다. 신부의 마음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예수님의 신부 당사자가 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이런 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리석다 미련하다 평가를 받습니다.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순종은 경제적이지 않습니다. 비합리적이고, 어쩌면 충동적입니다. 사랑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사랑은 독보적인 것입니다. 사랑은 분석하려는 자에게 어리석다 말할 것입니다.
7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 8장 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