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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지지 않는 신앙의 결말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장 27절

무엇과 싸우는지를 명확히 아는 자만이 십자가를 집니다. 그러나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상만을 좇는 자는 십자가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자기 목숨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죄의 세력과 싸운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죄의 근본은 정욕이며 정욕은 총체적인 것입니다.

정욕이 총체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보기에 문제가 되는 특정 죄가 사라지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고자 했던 특정 죄가 이제는 현상적으로 드러나지 않으십니까? 성경은 그것으로 죄의 세력과의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신앙은 곧 전쟁이기에 우리의 정욕은 다른 약한 부분으로 반드시 삐져나올 것입니다.

성적인 정욕에 약했던 자가 은혜를 입어 성적인 죄를 현상적으로 사라지게 했다 하더라도, 그는 특정 죄를 억제한 보상심리로 인하여 다른 정욕에 있어서는 죄를 너그럽게 허용하게 됩니다. 이것은 총체적인 문제인 정욕에 대하여 온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한 증거입니다. 즉 십자가를 지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자신의 욕구 충족을 오직 하나님께만 두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먹든지 입든지 하나님께 간절히 집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먹든지 입든지 하나님께 집중하기만 하면 되는구나 하며, 무엇이든지 내게 가하구나 라고 자긍하며 하나님과 명백히 대적을 이루는 세상것들을 탐닉할지도 모릅니다. 분명 주께서 주신 자유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개인의 구원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롭게 죄를 지으면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결국 1인분 인생으로 전락하겠다라는 이기적인 심산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정욕과 싸우면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유익이 될만한 하나님의 눈 앞에 선한 일만을 선택하여 한다는 것입니다. 정욕과 싸운다는 것은 내게 해가 되는 죄만을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해가 없는 것 같은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 같은 애매한 죄들로도 정욕이 드러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불의로 드러나는 정욕은 내 만족의 자리에 하나님이 아닌 죄를 다시 모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한다는 예수님의 요청은, 너무나 간단하게도 죄를 선택하려고 길길이 날뛰는 우리의 정욕과의 싸움은 내 육신이 아주 죽을 때까지 평생토록 이어져야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죽음으로 죄를 승리하시기까지 이 싸움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잘 싸워온 것 같다고 자긍하실만큼 자기 백성을 위한 공생애의 사역만으로 일관하신 수많은 시간이 지나고서도, 사역의 보람을 느낄 여유도 없이 아버지가 요구하시는 십자가의 순종 앞에서 땀방울을 핏방울처럼 떨어뜨리며 죄로 드러나려는 정욕을 쳐서 복종시키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쉬지않는 순종의 길입니다. 우리의 만족을 위해 어떤 죄도 탐닉할 정욕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길입니다.

이런 길은 오직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건 죄가 아닌데?’라는 애매한 입장에서 자신을 부드럽게 용납하며,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하여는 냉소적인 모습으로 사명없는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개인적인 인자함을 자긍하며 스스로를 스스로 용납하는 삶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태도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십자가의 길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총체적인 정욕을 오직 그분을 의지하며 확실히 제어하십시오.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을 것입니다.

25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3장 2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