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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흑암 중에라

7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8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9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잠언 7장 7-9절

성탄절에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왜 하필이면 고요하고 거룩한 밤일까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그 밤이 고요하고 거룩해졌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늘 어리석은 젊은이가 음녀에게로 가는 시각은,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입니다. 이런 때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대낮같은 노동과 수고가 끝난 때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혹은 박수갈채의 영광을 받은 후의 모습, 하던 일이 마무리 된 후의 모습, 마지막으로는 종말에 가까운 악한 이 세대를 통칭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는 지혜롭게 잘 살다가도, 손에 주어진 일들을 다 한 뒤에는 그 뒷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마치 옛날 골프선수 박세리가 “저는 골프는 배웠지만 어떻게 쉬는지는 배우지 못했어요”라고 했던 것 같이, 우리들의 모습은 성취와 일 중심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영광스러움 이후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영예를 얻고 우상이 된 듯 멋쟁이가 되었다가도, 그 들뜬 마음을 착지하는 방법을 몰라, 이상한 실수로 곤두박질치곤 합니다. 이것은 자기가 받은 영예를 어떻게 간수하여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의 세대가 겪는 모습들도 그렇습니다. 이전 세대는 하나님의 은혜로 전쟁과 가난을 극복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후에 주어진 안위를 당연히 여길 뿐, 그 안위와 평안한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하여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 세대 전부가 이러한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 스스로 음녀에게로 가서 망하는 이유는, 모든 일을 잘 성취한 뒤에 찾아오는 평안과 안위를 사용하는 방법에 대하여는 하나님아버지께 여쭙는 모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월 중순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시험과 학기가 끝나고, 사회인들도 마찬가지로 상반기를 결산하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여름의 휴식들을 당연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결산 이후의 안위와 안락함,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기를 바라시는지 궁금해하고 기도하며 잠시 멈춰서는 모습을 갖는 것이 천국에 합당한 모습입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 같으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시간들이라도, 나의 일이 다 끝났으므로 그 시간의 권리가 자기에게 있다고 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우리에게 주어진 안락함과 평안함을 지혜롭게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주께 다시 드림으로서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기를 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4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5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잠언 7장 4-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