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13장
두 짐승과 666
1
나는 용이 바닷가 모래 위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뿔이 10개이고 머리가 7개인 짐승 하나가 바다에서 올라왔다. 그 뿔들에는 10개의 관이 있었고 머리들에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이름들이 있었다.
루아흐 정역
짐승의 머리와 뿔은 다니엘서의 제국적 짐승 이미지와 연결된다. 바다는 혼돈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징하는 배경으로 사용된다.
주석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다니엘서의 여러 짐승 이미지를 한 몸에 겹쳐 놓는다. 용이 그에게 능력과 왕좌와 큰 권세를 준다는 점에서 하나님께 속한 권세를 흉내 내는 대적 세력으로 장면이 전개된다.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 같았고 발은 곰 같았으며 입은 사자 입 같았다. 용은 자기의 능력과 왕좌와 큰 권세를 그 짐승에게 주었다.
루아흐 정역
3
그 짐승의 머리 가운데 하나가 죽을 만큼 상처를 입었지만 그 치명적인 상처가 나았다. 온 땅이 놀라 그 짐승을 따라갔다.
루아흐 정역
치명적인 상처의 회복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흉내 내는 거짓 승리의 이미지로 읽을 수 있지만, 본문은 그 의미를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주석
치명상을 입었다가 회복된 머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흉내 내는 것처럼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본문은 그것을 참된 생명이나 부활이라고 부르지 않고, 사람들이 놀라 짐승을 따르게 된 현상으로 제시한다.
4
사람들은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었기 때문에 용을 경배했고, 짐승도 경배하며 말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그와 싸울 수 있느냐?”
루아흐 정역
5
그 짐승에게는 큰소리와 하나님을 모욕하는 말을 하는 입이 주어졌고 42개월 동안 활동할 권세가 주어졌다.
루아흐 정역
42개월은 제한된 박해의 기간이다. 짐승의 권세가 크지만 시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주석
6
그 짐승은 하나님을 모욕하려고 입을 열어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사람들을 모욕했다.
루아흐 정역
7
그 짐승에게는 성도들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이길 권세가 주어졌고 모든 지파와 백성과 언어와 나라를 다스릴 권세도 주어졌다.
루아흐 정역
짐승은 성도와 싸워 이기지만 이것이 성도의 최종 패배를 뜻하지는 않는다. 10절은 바로 이 상황에서 성도에게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8
땅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창세 때부터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모두 그 짐승을 경배할 것이다.
루아흐 정역
“창세 때부터”가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된 때를 수식하는지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때를 수식하는지는 문장상 해석이 나뉠 수 있다. 본문은 어린양과 생명의 책을 함께 최종 소속의 표지로 제시한다.
주석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루아흐 정역
10
사로잡혀 갈 사람은 사로잡혀 갈 것이고, 칼로 죽임을 당할 사람은 칼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여기에는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다.
루아흐 정역
사본과 번역 전통에 따라 첫 문장을 명령으로 읽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성도들이 폭력으로 맞서기보다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며 인내해야 한다는 결론은 같다.
주석
이 절은 신앙의 승리를 세상에서 살아남거나 폭력으로 되갚는 일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사로잡힘과 죽음의 가능성 앞에서도 성도에게 요구되는 것은 인내와 믿음이다.
11
나는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 그 짐승은 어린양처럼 뿔이 2개 있었지만 용처럼 말했다.
루아흐 정역
두 번째 짐승의 “어린양”은 헬라어 ἀρνίον(아르니온)으로 5:6의 어린양과 같은 단어다. 겉모습은 어린양을 닮았지만 말은 용처럼 한다는 대조가 그리스도를 흉내 내면서 용의 뜻을 전달하는 권세를 드러낸다.
주석
12
그 짐승은 첫째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사하고 땅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나은 첫째 짐승을 경배하게 했다.
루아흐 정역
13
그 짐승은 큰 표징들을 행했다. 사람들 앞에서 하늘에서 땅으로 불이 내려오게 하기도 했다.
루아흐 정역
둘째 짐승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표징까지 행하지만 그 표징이 진리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계시록은 표적의 크기보다 그것이 누구를 경배하게 하는지 분별하도록 이끈다.
14
그 짐승은 짐승 앞에서 행하도록 허락받은 표징으로 땅에 사는 사람들을 속였다. 그리고 칼에 맞고도 살아난 짐승을 위해 형상을 만들라고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루아흐 정역
짐승을 위한 형상을 만들게 하는 과정은 기적과 선동이 우상숭배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 준다.
15
둘째 짐승은 첫째 짐승의 형상에 생기를 주어 그 형상이 말하게 하고, 그 짐승의 형상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게 했다.
루아흐 정역
“생기”는 우상에 실제 생명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우상이 말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만적 권세를 나타내는 표현이다.
주석
우상은 말하고 명령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것을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죽임을 당한다. 종교적 충성의 강요가 생명과 안전의 문제로 바뀌는 장면이다.
16
둘째 짐승은 작은 사람과 큰 사람, 부자와 가난한 사람, 자유인과 종을 모두 강요하여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했다.
루아흐 정역
오른손과 이마는 행동과 정체성·충성을 상징하는 위치로 읽을 수 있다.
주석
오른손과 이마에 표를 받게 하는 장면은 짐승에게 속했다는 표지가 개인의 생활 영역에 강제로 부과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17
그 표,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숫자를 가진 사람 외에는 아무도 사고팔 수 없게 했다.
루아흐 정역
표를 받지 않으면 사고팔 수 없게 된다는 규정은 짐승에 대한 경배와 사회·경제적 활동을 결합한다. 신앙의 타협이 사적인 생각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의 삶 전체를 압박한다.
18
여기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짐승의 숫자를 계산해 보아라. 그것은 사람의 숫자이며 그 숫자는 666이다.
루아흐 정역
666의 의미는 히브리어·헬라어 이름의 숫자값, 불완전함의 반복 등 여러 방식으로 해석되어 왔다. 본문은 “사람의 숫자”라고 말하지만 특정 인물을 단정할 정보는 충분히 주지 않는다.
주석
본문은 짐승의 수를 계산할 때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사람의 수라고만 제시한다. 특정 인물을 성급하게 단정하기보다 본문이 남겨 둔 경계 안에서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