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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니까..

예수님이니까..

44그리고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내 발에 물도 주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았다.”

누가복음 7장 44절

‘예수님이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까.. 지금 시몬은 이런 생각으로 예수님을 대한 것입니다. 그 당시 수많은 무리들도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시니까..’, ‘원래부터 선한 일을 하고 싶어 하셨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예수님을 대우한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님이 선행을 하실 기회를 내가 드렸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호의를 응당 권리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발 씻을 물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분은 능력이 많으시니까, 내가 기나긴 순번을 기다렸으니까, 본래 선행을 베풀고 싶어 가르치고 선행할 기회를 벼르시는 분이시니까, 집에서 내게 선행을 하게 해드린 것만으로도 나는 신사야’라며 예수님의 은혜를, 예수님이시니까 쉽게 하신다고 생각하기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생각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오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모든 은혜를 인격적인 경위에서 우리에게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쓰듯이, 우리가 애쓰듯이 하나님도 마음 쓰고 애쓰셨다는 것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을 막연한 초월자의 위치에만 고정시키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호의를 자신의 권리로 여겨 남용하기 위함입니다.

20“에브라임은 내 귀한 아들이 아니냐? 기쁨을 주는 아이가 아니냐? 내가 그를 꾸짖을 때마다 그를 다시 생각한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그를 향해 애타고,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겠다.” 여호와의 말이다.

예레미야 31장 20절

예수님이 들어가신 집에 들어와, 예수님의 발을 머리카락과 눈물로 하염없이 닦은 여자는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자신에게 예수님이 베푸실 호의만을 이해타산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도대체 왜 그렇게 아낌없이 사랑을 자신과 사람들에게 거저 베푸시는지에 대해 인격적인 의문을 가져본 것입니다. 그러니 따라다니면서 베푸시는 ‘서비스’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변에 있는 예수님의 의도와 마음에 주목한 것입니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사람은 예수님이 어떤 고통을 감수하며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고생의 경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받는 호의에 대하여, 호의를 베푸는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람을 향해서도 그 사람이 그렇게 베풀 수 있게 된 경위와 베푸는 당사자의 마음에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지점에서 유치한 수준에 머물러 깔깔거릴 뿐입니다.

이익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례를 무례로 자각할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24여러분이 이웃의 포도밭에 들어가면 원하는 만큼 포도를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에 담아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23장 2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