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조용히 들리는 지혜자들의 말들이 우매한 자들을 다스리는 자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18지혜가 무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 하느니라
전도서 9장 17-18절
우매한 자에게는 호령함이 무기입니다. 지혜는 그렇게 무기처럼 휘두를 필요가 없다고 대조되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은 사실 역정을 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능력이 되게 하는 것은, 가르치는 말씀을 손에 쥔 도구로 여기지 말고, 손 잡아주시는 예수님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아내와 가치관 충돌이 일어날 때, 강압하고 주입하려는 제 자신을 보면, 우매한 자가 호령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말씀이 살아계신 주님이라는 것을 망각한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 집중한다면, 전하게 되는 말씀은 허공에 흩어지지 않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관계를 놓치면 말씀을 개인적인 목적을 기대하고 휘두르는 도구처럼 여기게 됩니다.
의연함은 주님을 향한 신뢰에서 나옵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강압한다면, 누구든지 그에게서 주님을 향한 신뢰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여유나 온유함은 자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바른 관계를 놓칠 때, 말씀을 가지고서도 호령하게 됩니다. 일하실 주님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 없는 교육은 다스리기를 원하지만 다스림 받기를 원하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다스려지지 않는 사람과 동행하실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는 다스려지지 않는데, 기도가 무용하고 공허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제가 선택한 행동을 하려고 활개 치는 두 손을 모으고, 제가 생각하는 목적들의 성취를 바라보려는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있지 못하는 두 무릎을 꿇으려 하는 시간 자체가 기도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말씀을 전하고 타인의 마음에 일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순진한 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순진하면 논쟁이 생깁니다. 소리치게 됩니다. 모든 진리를 구호처럼 연신 외치게 됩니다. 말투와 언변을 의식하게 됩니다. 결국 위선자가 되는 길은 기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19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4장 19-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