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장 8-9절
비슷하지만 진짜가 아닌 것을 사이비라고 해요. 신앙심과 종교심이 다른 것은 마음의 출발이 어디서부터인지의 차이입니다. 신앙심은 하나님께 받은 마음이지만, 종교심은 받지 않고 받은 것처럼 스스로 생각하는 마음이에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의무에 의한 종교활동만큼 신앙을 위협하는 사이비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단이나 사이비는 경계하지만, 가장 위협적인 ‘의무감’은 경계하지 못하고 있어요. 주님과 나 사이에서 주어진 신앙이 확인된 후에는 적절한 의무감이 건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의무감은 순식간에 곰팡이처럼 피어나, 신앙 공동체 안에서 믿는 것 같은 행세를 하고 이미지 관리를 하며 가만히 들어와 이익을 추구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많은 사람을 조장하게 됩니다. 신앙이 피어나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신앙을 가진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 의무감이라는 무서운 함정이에요.
주님과 관계가 있다면, 주님과의 인격적인 교제 안에서 빚어지는 지식과 감정을 따라서만 의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과 관계가 없다면 스스로 자아낸 지식과 감정으로 의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주님과의 마주침이 없음에도 주님과 교제하는 척을 하게 되는 것이에요. 사람들의 가르침을 따라 피상적인 공경함은 있으나, 사실 마음으로는 ‘모든 사람이 없는 것을 있는 척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면서 경건의 모양만 옷처럼 입은 자들의 결국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예복인 줄 알았으나 예복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이에요. 자신에게 있는 믿음이 믿음 생활처럼 느끼고 싶어 자아낸 모조품인지, 주님께 받은 진품인지 확인하는 것은 정말 필요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기 전에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지낸 자의 결말은 엄청난 부끄러움일 것입니다. 마지막에 이르러 “나는 너를 모르는데 왜 나를 만난 척을 했니?”라는 말씀을 들으며 공개적이고도 영원한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에요.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장 22-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