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창세기 2장 17절
33그분은 마음으로 사람을 괴롭게 하거나 슬프게 하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33절
7여러분의 자녀에게 이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십시오.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걸을 때나, 누울 때나 일어날 때나 이 말씀을 이야기하십시오.
신명기 6장 7절
자녀에게 자신이 겪은 여러 고난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에요. 그러나 가르침의 대상이 자신과 같은 우여곡절을 겪어봐야 한다고 여기는 기득권 의식을 갖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선생이에요. 일만 스승이 있으나 아비가 없다고 말하는 바울의 맥락은 이와 같은 차원이에요.
하나님은 자녀들이 주먹구구식의 막연한 우여곡절을 통해 하나님을 어렵사리 사랑하게 되는 것을 의도하지 않으셨어요.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심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이에요. 인생이 고생하는 것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대부분 자신의 범죄로 말미암아요. 그렇기에 깜깜하고 막연한 고난으로 걸어가는 것을 자처하지 않게 하시려고, 어두운 인생을 분명하게 조명할 수 있는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19악한 사람들의 길은 어둠과 같아서 무엇에 걸려 넘어지는지도 알지 못한다.
잠언 4장 19절
부모로 하여금 자녀에게 강론하게 하심은, 하나님의 본심에 기인한 권유를 하신 것이에요. 하나님은 죄가 들어온 이 세상에 이제는 죽기 전엔 완벽한 에덴은 다시 없을지라도, 우리나 우리의 자녀들이 스스로를 주님 안에서 말씀으로 날마다 죽이며 완전해지는 에덴을 소망하는 마음이 커질 만큼의 간헐적이고 부분적인 에덴을 인생에서 누리게 하고 싶으셨던 것이에요. 죄가 들어오기 전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도 친교를 통해 사랑 안에서 사람이 자신의 삶에 필요한 교육적 영향을 받게 하고 싶으셨던 것이에요.
이생에는 분명하게 우리가 누리는 부분적인 에덴인 하나님과의 친교를 전투적으로 방해하는 죄의 세력이 남아 있어요. 심지어 우리 자신에게도 날마다 은혜를 사모하지 않고 방임할 때 솟아오르는 마음의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있어요.
그렇기에 앞서 말씀드렸듯 우리가 선생의 마음으로 피교육자가 자녀든 자녀가 아니든 간에 그들이 내가 겪은 막연한 고난들을 겪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기득권에 근거한 게으른 생각으로 직무유기하거나 방임할 것이 아니라, 세상 교육에 치중했던 열심만큼이라도 성경 교육을 분명하고 성의 있게 제공한다면, 부모와 자녀, 교육자와 피교육자 상호 간에 주님과의 관계를 이 세상에서 힘 있게 보전하며, 그제야 세상 중에서 헤매던 사람도 우리의 소망에 관심을 둘 수 있을 것이에요.
15마음속에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거룩하게 모셔라. 여러분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든 대답할 준비를 해라.
베드로전서 3장 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