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만일 의인이 그 공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그로 말미암아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이요 27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 28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에스겔 18장 26-28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선행이나 공로를, 우리의 공로로 결코 보시지 않으세요. 만일 우리가 죄에서 떠나 선행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올바른 모습을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 모습’으로 보세요. 그렇기에 의인이 백 번 잘하다가 한 번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죽는다는 것은, 누리던 자유를 스스로 걷어찬 것이 돼요.
그렇지만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난다는 것은, 이제야 진실로 자기에게 좋은 것을 헤아리고는, 자원하여 선택한 것이 돼요. 그러나 앞서 의를 행하다가 자기의 악으로 죽게 된 의인이었던 자는, 의 행하기를 ‘자원’하지는 않았던 것이에요. 의롭고 바른 삶을 사는 사람은 생각해 보아야 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내게 즐거움인지 의무인지를 말이에요.
사랑하는 자가 사랑하고 있는 자신의 태도를 자신이 사랑받아야 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에요. 그것은 자신이 사랑을 준 만큼 받겠다는 보상심리가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 준 사랑을 어느 정도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에요. 진짜 사랑은 밑 빠진 독에다가 물을 붓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감사해요. 그런 사랑이 밑 빠진 독을 녹여 새 항아리가 되게 해요.
순종도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없어요. 순종은 자유이며, 누리게 하신 은혜예요. 순종 자체가 우리에게 즐거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아직 나의 순종을 모종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시지만, 회개시키시려는 수단으로 사랑을 여기시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하나님은 사랑을 수단으로 사용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 자신만의 즐거움으로 남용하는 자나, 주시는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보다 사랑하려는 자들을 끝내는 미워하시기로 정하셨어요. 주시는 사랑을 하나님보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사랑은 받고 싶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지는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런 자들이 죄를 쉽게 생각해요.
32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에스겔 18장 3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