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브리서 12장 22-24절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장 5-6절
지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앉은 곳이 어디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미 천국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다고 에베소서는 증언하고 있으며, 히브리서의 말씀 또한 우리가 지금 도착한 곳이 하늘의 도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말이지요!
보십시오, 바울도 우리에게 우리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고 말한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타국인이며 나그네라는 것을 인정하시나요? 또한 우리는 ‘이미’ 천국 백성이기에 천국에 도달할 때에야 국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시나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이미 천국에 거하고 있습니다. 단지 지금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려는 계획 안에 우리가 이 땅의 나그네로 보내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계획은 무엇일까요? 아직 자녀로 부르셨다는 부름, 즉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우리가 거하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 복되다는 것을 자녀로서 증언하게 하시는 계획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서 어떻게 그 복음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이 땅에서 우리의 시민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려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구원받았음을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용서와 구원의 결과인 우리가 하늘의 시민이 되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받은 시민권이 있는데도 이 땅의 부당함과 정의롭지 못함만을 바라보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 땅만 바라보며 불평하며 낙심한다면 그가 시민권은 가졌을지라도 하늘의 시민입니까, 아니면 땅의 시민입니까? 이 땅을 바라보며 결국 땅의 시민들의 행동을 본받아 같이 살아간다면, 그는 하늘의 시민권을 감추어 두었던, 즉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던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우리에게 이미 천국의 시민권을 주셨고, 지금 우리가 사는 땅에서 천국의 시민으로서 살아가면 반드시 미움도 받는다고 믿을 만한 권위로써 우리에게 증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 하늘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받는 미움이 있습니까? 혹은 우리의 삶과 증언을 통하여 우리가 사는 나라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나아오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용서는 천국을 보장받고 아늑한 마음으로 이 땅에서 남은 삶을 살라는 용서가 아닙니다. 천국이 보장되었다는 아늑한 마음으로 평안하게만 살아간다면, 그는 반드시 문 밖에서 이를 갈며 울 것이고, 지옥에 합당하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증언하는 성경의 말씀대로라면, 복음은 반드시 우리에게 이 땅에서 각자 거해야 하는 태도를 분명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우월함과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통치의 선하심을 드러내어, 궁금해하는 자들에게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계속 이 땅의 일들에만 머물 수 없으며, 죄를 계속해서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집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늘의 백성의 모습을 증언하는 이유도 우리가 지금 가져야 하는 모습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옳은 행실을 받아 입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삶으로 선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을 간절히 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이 모든 말씀을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주셨습니다.
8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9장 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