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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죄란 무엇인가」 사랑 없는 비판과 표현하지 않는 위선 사이에서

「정죄란 무엇인가」 사랑 없는 비판과 표현하지 않는 위선 사이에서

37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누가복음 6장 37절

믿는 우리는 정죄공포증에 걸려있습니다.

저는 정죄하지 말라는 말을 두려워하여, 오히려 우리가 하고있는 정죄를 두 가지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1)아무 긍휼 없는 비판
2)표현하지 않는 위선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비판하지 말라’ 라는 말씀을 봅니다. 우리 눈에 잘 띄는 말씀은 극단에 치우친 말씀인데, 하나님께서는 양 극단이라는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참 교제의 정직을 배워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첫째로, 아무 긍휼없는 비판이라는 것은, 상대를 만지시는 하나님을 기대함이 전혀 없이 찌르는 말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럴 때 상대가 어떤 상처를 받을지도 알면서, 그런 아픔을 의도적으로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한 쪽 극단의 정죄입니다.

둘째로, 표현하지 않는 위선이라는 것은, 미움을 숨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교제하기 위해서는, 관계 가운데에 서로 표현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마음에 철벽을 두고 상대에 대한 나의 감정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내가 받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마음이 조금도 있지 않은 것입니다. 교제에 있어서 내가 전해야 할 것만 전하며, 치고 빠진다는 것은 기계적인 것이고 비인격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한 쪽 극단의 정죄입니다.

우리는 두 극단에 치우쳐있습니다. 참다 참다 터지거나, 마음 속의 무관심으로 통상적인 인사치레나 할 뿐입니다. 우리를 만나주시는 주님은, 그 중간을 자신의 보혈로 메꿔주셨습니다. 극단의 좌우로 치우치는 나에게, 주님은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인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오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야만 하는 이유는, 극단에 치우칠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야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화목하기 위해서는,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해야 상대의 마음도 헤아리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기도해야 내 양심을 건드리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주님은 우리와 만나주시고, 또 주님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원함을 우리 마음에 심어주십니다. 그 원함이 행함이 되기까지, 봉오리가 피어날 때까지 우리는 많은 실수 속에서 훈련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행함이 뒤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미움의 고백이든지, 갈등의 화해라든지,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작은 행함이 시작될 것입니다. 노려보며 힘주던 눈을 버리거나, 숙덕거리려는 마음을 죽이거나, 어쩌면 마주칠 때에 한 번 미소라도 짓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행함은 우리가 주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삶의 증거이며, 세상을 화목케하는 씨앗인 것입니다.

36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누가복음 6장 3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