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장 4절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볼모로 잡고 6일간 경찰과 대치한 사건에서 처음 관찰되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처음에는 인질들도 범인들을 두려워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들에게 동화되어 자신들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을 적대시하고, 사건이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는데, 이러한 심리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은 인질사건과 같은 극한상황에 처하게 되면 강한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인해 인질범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을 오히려 고맙게 여겨 차츰 그들에게 온정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자신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에게 반감까지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는, 마귀의 유괴에서 풀려나 아버지의 자녀로 돌아와서도, 유괴범을 다시 찾으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죄의 속박으로, 마귀의 인질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오늘도 아버지께서는, 스스로 마귀의 종노릇 하시려는 자녀들을 향해서 안타까움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정말로 무서운 분이십니다. 죄를 용납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실 때부터, 하나님과의 교제로만 만족할 수 있도록 지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즐거워하도록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마다, 마음에는 뻥 뚫린 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배가 비어있으면 배를 채우고 싶어하듯, 마음이 비어있는 자들은 마음을 채우고 싶어합니다. 주님으로만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는 것을 욕심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불만족을 채우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배에 생수가 흘러나올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충만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오직 단 하나의 좁은 길인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 욕심대로 다른 것으로 만족하려는 모습을 하나님은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오늘날 예수가 아닌, 자기의 것들로 우상숭배 하는 것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는, 그 사람과 교제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듯,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그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 말씀을 살피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소리지르지만, 찬양한다고 울부짖지만, 예수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찾아올 것입니다.
믿음은 먼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기의 뜻과 자기의 유익을 먼저 찾는 것이 끈기있는 신앙인줄로 착각합니다. 그것은 끈기있는 기다림이 아니라, 완고한 고집이고 완악함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귀머거리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일부러 애써 바라보지 않으려는 맹인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귀에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하며, 자신의 고집을 꺾으라 말하실까봐 걱정하며 성경을 읽지 않으십니까? 종교는,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할 수 있도록 종교의 틀을 제공합니다. 크게 찬양하며, 헌금을 내며, 평소에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신앙생활입니까?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던 많은 사람도, 말씀 없이 종교의 틀을 맹신하며, 더 큰 소리로 찬양하고 소리지르며 귀를 막고 선지자를 죽였습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마음은, 하나님의 뜻을 기대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결국에는 우리를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들의 욕심을 마음대로 자긍할 수 있는 종교활동을 지키려 애쓰며, 말씀의 전달자였던 선지자와 예수를 죽였던 사람들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살인자입니까 그리스도의 제자입니까?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야고보서 4장 15-1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