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8장 1-3절
30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한복음 19장 30절
고린도전서에서는, 두 가지 신앙의 태도를 대조해요. 하나는 신앙을 사변적인 사유의 대상으로 여기는 태도,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로 여기는 태도예요. 막상 가까이 들어가 보면, 사변적인 사유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에게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있어요. 그러나 신앙이 지적 유희에 그쳐버린 사람이 가진 하나님과의 관계는, 과외 선생님과의 관계, 혹은 보험설계사와의, 혹은 의논할 만한 자문 위원과의 관계에 머물러 있어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와 이웃과의 관계로 이어져요. 하나님을 선생님으로, 설계사로, 자문 위원으로 두면, 최신 지식의 업데이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질 거예요. 어떤 전자기기의 얼리어답터들이, 구식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도 있는데, 그와 같이 자신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신앙 지식의 조예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게 돼요.
그러나 꼭 하나님을 선생님으로, 설계사로, 자문 위원으로 두는 것을 나쁘게만 보려는 것은 아니에요. 하나님을 올바르게 만나는 태도는, 하나님을 선생님 같은, 설계사 같은, 자문 위원 같은 아버지로 두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실제로 선생님이시고 설계사이시고 자문 위원이시지만, 궁극적으로 아버지이세요. 아버지이심을 놓쳤을 때, 우리에게 있는 모든 지식이 주변인을 재단하는, 격하게 말하면 사실상 단두대나 망나니가 든 험악한 칼이 돼요.
선생님처럼, 설계사처럼, 자문 위원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을 가장 선용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녀의 모습을 예수님이 보이셨어요.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버지이심을 알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람들에게 격한 감정을 자주 보이셨어요. 그들을 개나 돼지로 보셨고, 독사의 자식으로 보셨어요.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이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한 다리 건너서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독사를 두고 관계한 것으로 보신 것이에요.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의 피로 이간의 독사를 제하고 하나님과 지내야 해요. 독사는 우리를 중독되게 하여, 취해서 미혹되게 해요. 신앙을 사변적으로만 사유하는 것은 너무나 매혹적인 일이에요. 우위를 선점해서, 고상한 비장함도 누릴 수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가지신 사랑을 누리지 못하게 돼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지 못하게 돼요. 자신을 따르는 사람은 많아지나, 자신은 한 번도 하나님을 따라본 적 없는 사람으로 드러나게 돼요.
많이 알게 된 것과, 실제 신앙의 수준에는 차이가 있는 듯해요. 기도를 하며 지내보면,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내게 주어지는 요청들은, 굉장히 작은 것, 슬쩍 보면 하잘것없어 보이는 섬김 가운데 나를 두세요. 마치 다른 사람의 손톱깎이로 나를 사용하시거나, 발뒤꿈치 각질 제거기로 나를 사용하시는 듯해요. 그러나 그것이 진정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녀가 다니는 올바른 길이에요. 당신을 타인의 신발 털이개로 사용하실 때 기뻐하세요.
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요한계시록 2장 4-5절
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장 34-3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