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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저를 구원하소서!

지금 저를 구원하소서!

9앞에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이 있다!’ 10‘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는 복이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마가복음 11장 9-10절

우리가 아주 오랫동안 수십 년간 불렀던 찬양들 중, ‘호산나’라며 찬양하지 않은 기독교인은 없을 거예요. 이미 교회에서 하는 찬양이고 곡조가 좋기에, 우리는 호산나가 어떤 맥락의 단어인지를 섬세하게 분간한 적이 없었습니다. 호산나의 의미는 호쉬아(구원)와 나(지금)가 합쳐진 말이에요. ‘지금 구원하소서’라고 하는 것이 바로 호산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시작하시고 한결같이 하나님의 통치를 전파하셨어요. 하나님께 주권을 내어드려야 할 필요성을 언급하시고, 죄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항상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님께 지금까지의 가르침이 맺은 결과를 보여주셨어요.

모든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에서 이 장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한다는 필요성을 드러내는 장면이에요. 예수님께는 사람들의 ‘호산나’가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장면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호산나’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기에 성경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할 때도, 호산나라고 외칠 때와 같이 ‘소리 지르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3그들이 다시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14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무슨 악한 일을 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더욱 크게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십시오!’

마가복음 15장 13-14절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외침에서 우리가 단지 ‘지금’만을 주장할 때, 사람들이 받으려는 구원이 어떤 구원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하나님이 주시려는 구원은 우리가 원하는 ‘지금’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인정하게 하시는 다스리심’이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님께 지금 구원해달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 기간 동안 그 누구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가시적인 매력에만 매달렸다는 뜻이에요.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모든 가르침을 귀로 듣게 하시고, 예수님의 사랑을 눈으로 보게 하시며, 육신의 오감으로 겪게 하시고도, 예수님 당신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일이 아니고서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오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셨어요. 예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의도대로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는 본질적인 한계를 예수님도, 하나님도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호산나의 장면이 예수님께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순간이라고 착각하곤 해요. 하지만 예수님의 인생에서 진정한 스포트라이트는 사람들의 자기 뜻대로 하는 인정인 ‘호산나’의 순간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아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이었습니다.

5그러나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에게로 간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 아무도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다. 6오히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했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 찼다. 7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한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5-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