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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

탐욕

27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멀리하라.

잠언 4장 27절

좀 색다른 탐욕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소인배의 욕심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그냥 자신이 그 구렁텅이에 빠짐으로 결국 그렇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인배라는 미명을 가진 자들의 욕구는 무서운 것입니다. 정의, 대의, 그들의 이념은 많은 사람의 잣대가 되고, 세상을 좌우로 갈라버리는 가장 위험한 탐욕입니다.

정의를 자신이 품으려는 것, 옳은 분별의 잣대가 되어 살아가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아닌 나 자신이 되려는 탐욕은 나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정의에 중독되어버립니다.

오직 정의와 심판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종교라는 것이 정말 무섭습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스스로 하지 않습니까? 상식적으로 함께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교회에 넘쳐납니다. 경찰과 도둑, 피해자와 가해자, 하나님과 마귀가 동거하는 교회는, 끝까지 말과 혀로만 정의를 품습니다. 어디에 진실이 있는지 모릅니다. 누구도 책망하지 않는, 누구도 제대로 책망받지 않는 그런 교회에서 어떤 올바른 교화가 가능할까요.

큰 악을 행하기 위해서, 작은 악들을 간과해 주는 용서의 말들을 전합니다. 많은 교회는 자신들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남도 못 들어가게 합니다. 실제로 교인 한 명을 찾으려고 동서남북을 두루 다니다가 하나 찾아서 배나 더 지옥의 자식을 만든다는 말씀이 옳습니다.

‘기독교’ 어쩌면 어떤 노조의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더러운 누룩이 분명 섞여 있음에도 누구도 그 종교의 멍에를 벗어버리려고 하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분명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멍에를 지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 모두가 스스로 지어 놓고 스스로 하나님의 성전이라 여기는 그 종교를 유지하려고 안달하며 울고불고합니다. 벨리알과 하나님이 함께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왜 굳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지키려고 큰 악과 동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는 분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지만, 어느 누가 교회를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를 떠올릴 수 있겠습니까? 이미 교회들은 기독교라는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가장 무서운 마약을 파는 마약상입니다. 그것은 아무 대가 없는 ‘용서’라는 마약입니다. 용서를 팔고 용서받지 못하게 합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용서를 샀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뭔가 천국의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결국에 하나님 나라를 전혀 모르는 것이 정작 자신이라는 것을 알 때에는 이미 늦어버리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스스로 거룩하다는 착각을 품었던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서로 거룩함에 희열을 느낄 것이 아닙니다. 거룩은 고통스러워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구별될 거룩인 것입니다. 교회 출석과 헌금으로 거룩해진다고 말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너무 몰랐던 자들이 후회할 기회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아직 부족해서 그런지 이제는 교회가 무엇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혼란스럽습니다. 공존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고, 그것을 정확하게 분별해 주는 용기 있는 선배들은 이미 없습니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소홀히 여긴 자들처럼 이미 자신의 생계와 욕심이 먼저인 자들이 가득합니다.

예수 이외의 것들을 다 버리지 않는다면, 끝까지 종교라는 자물쇠로 하나님 나라의 문을 잠그려 한다면 그 나중이 어떨지 걱정이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조용히 사는 것만이 지혜로운 처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함과 진실함을 드러내면 온갖 화살을 맞게 되는 이 세상이 두렵습니다. 아버지의 때와 시기를 기다리는 온유함과 인내를 제게 넘치게 하실 아버지의 사랑을 신뢰합니다.

진실로 거짓말쟁이들보다 가난한 자가 낫습니다.

22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고 가난한 사람이 거짓말쟁이보다 낫다.

잠언 19장 2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