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를 매일 집에 데려다주면서, 항상 지나치는 성당이 있습니다. 성당을 지나갈 때마다 왜 성당에서는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기도할까, 그 이유가 뭘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성당, 즉 가톨릭은 마리아가 출산 이후에도 평생 동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경 기록상의 예수님의 형제들은 모두 사촌동생을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또한 마리아도 거룩하며 승천했다고 주장하며, 마리아가 동정녀로 예수님을 출산한 것은 예수님의 인간성의 권위를 위해서 그렇게 태어나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동정이었으며, 승천했으며, 거룩했다는 주장이 아무리 그럴듯한 근거를 가지고 있어도 크나큰 빈틈을 그들 스스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위해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최대한 낮아지시려고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가장 낮아지심으로 가난하고 천한 우리들을 위로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인간성의 권위를 위해서라면 왕궁에서 태어나셨어야지, 애초에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모순인 것입니다.
처녀가 잉태했다는 것 자체가 세상에서는 수치입니다. 마리아는 졸지에 요셉에게도 미혼 임산부로 판단되었고, 현실적으로 미혼모의 임신이었으며 미혼모의 출산이니 이것은 굉장한 수치이며 부끄러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신 것 자체가 그 신분의 비하였으나, 그보다 더 비하였던 것은 ‘처녀’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인 것입니다.
단지 처녀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과 일치하는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14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장 14절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기쁨을 입은 우리에게 평안이요, 하늘에는 영광인 것입니다.
처녀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의 사건은 현재 아픔받는 미혼모들에게도 위로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처녀로 잉태했다는 것과 처녀에게서 났다는 것은 세상에서는 가장 낮아지시고 멸시받으실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예수님의 권위를 위해서 ‘거룩한 동정녀’를 사용하셨다는 말로 둔갑하여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을 섬기도록 조장하는 교리는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 자가 없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기도드려야 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신명기 5장 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