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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제와 자원제

번제와 자원제

19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장 19-21절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는 것은 속죄제를 반복해 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물질적 부요함을 자랑하며 죄를 지은 뒤 제사로 때우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재물’로 갚을 수 있다고 여겼고, 하나님은 그런 그들의 얕은 신앙에도 사랑 때문에 속아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이용하며 고의적으로 죄를 짓는 백성을 보시며,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슬픈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한 속죄의 반복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속죄제보다 ‘번제’와 ‘자원제’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단번에 속죄제물로 삼으시며, 속죄의 제사를 끝내버리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성령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 즉 마음과 삶으로 드려지는 번제와 자원제를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번제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잊는 예배

번제는 죄로 빚어지지 않은 욕심조차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다윗과 마음이 하나였던 요나단처럼, 하나님과 마음을 하나로 연합시키려는 예배입니다. 내 안의 욕망과 불안을 활활 타오르는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번제는 두렵고 떨림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잊어버리려는 사랑의 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사랑할 기회를 은혜로 주셨다면,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부합한 사람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자신을 번제로 드리며, 하나님께 마음을 깨어드리는 삶이 곧 예배의 본질입니다.

자원제는 사랑이 넘쳐 터져 나오는 예배

자원제는 사랑이 번제 위에서 넘쳐흐를 때 터져 나오는 폭발적인 헌신입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반드시 창의적인 행동이 뒤따릅니다. 욕심이 절제되지 못하면 죄를 짓듯이, 사랑이 절제되지 못하면 주님을 향한 자발적인 헌신으로 터집니다.

예수님의 평소 사역과 기도는 번제의 시간이었고, 성전을 정결케 하신 사건은 자원제와 같았습니다. 그분의 마음은 하나님과의 친교에 불타올랐기에, 성전이 시장으로 변한 모습을 보고 의분을 참지 않으셨습니다. 그 열렬한 자원제적 사랑이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로 이끌었습니다.

십자가는 억지의 결과가 아니라, 자원적 사랑의 결정체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끌려가신’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자신을 내어드린 것입니다. 우리 또한 갑작스레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일관된 번제의 삶이 쌓이지 않고서는 자원제의 사랑도 없습니다.

비느하스의 창끝의 열정,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던 담대함은 하나님을 향한 평소의 번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하나님께 일관된 번제의 시간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께 감동을 드릴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냥 자녀로 살아갈지’, ‘하나님의 마음을 북받치게 하는 자녀로 살아갈지’는 구원받은 자의 선택입니다.

번제는 하나님을 향한 일상의 사랑이고, 자원제는 그 사랑이 넘쳐 터지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