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하나가 되면,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7-8절
어제 시험공부를 너무 안해서, 아버지께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공부를 안해서 그런데, 성경시험이니까 아버지가 다 기억나게 해주세요”
그랬더니 오늘 순서에 저 말씀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호수야, 스스로 속이지 마라 니가 심은대로 거두리라 ㅎㅎ”
저는 공부 안해서 생기는 걱정보다 아버지가 대답해주신 것에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저 말씀을 묵상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은 무엇을 심으며, 어떻게 심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속이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용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아주 교묘한 말로 나의 욕심을 채우고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의 사용’을 ‘나의 형통’과 동일시 하듯 이야기하는 설교들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보통 구약성경에서는 요셉과 다윗과 다니엘을 이야기하며 형통과 접목시키려고 하는 청소년 사역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생각하게 합니다. ‘국무총리요셉’, ‘골리앗을 이긴 다윗’, ‘똑똑한 다니엘’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은 다시 생각합니다. ‘국무총리 우리 아들’, ‘골리앗을 이긴 우리 아들’, ‘똑똑한 우리아들’ 언제까지 우리 육체적인 생각에 골똘하시겠습니까? 어떤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성공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요셉의 옥살이’, ‘사울을 피해다니는 다윗’, ‘나라를 잃고 포로생활하는 다니엘’, 이 대목에 당신과, 당신의 자녀를 집어넣으십시오. ‘내 아들의 옥살이’, ‘사울을 피해다니는 우리 아들’, ‘나라를 잃고 포로생활하는 우리 자녀’
이렇게 생각하려니 갑자기 먹먹해지십니까, 답답해지십니까, 그것은 당신의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여러분, 우리가 혹은 우리 자녀가 요셉과 다윗과 다니엘처럼 되길 원하십니까? 요셉과 다윗과 다니엘을 어떻게 보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먼저 아십시오. 가장 크고 먼저되는 우리의 감사가 무엇인지 아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것으로 이미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부족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계속해서 갈급합니다. ‘더 멋있게’, ‘더 많이’, ‘더 부요하게’, 하지만 하나님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육체적인 갈급함을 갖기를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아직 아비없는 고아와 같은, 목자없는 양 같은 사람들에게 부족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전하려는 갈급함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우리는 이미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진정 아셔야 합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높아지기 위하여 믿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에서 형통해지기 위하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통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당신과의 교제의 형통을 이야기 하십니다. 하나님과 원활한 소통의 형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욕심을 채워주시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 당신의 자녀인 우리의 교제를 위한 회초리요, 매이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당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내 욕심을 하나님의 뜻인 듯 포장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십시오, 나의 작음을 알고 하나님의 크심을 알 때에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인 것 처럼 행했던 일들을 내 욕심인 것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조급하지 않습니다, 안달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의 헌신과 사랑과 자원하는 심령으로 즐거워할 뿐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으십시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사용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용될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는 겸손히, 성령을 운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 앞의 일들로 얼마나 근심합니까, 얼마나 조급해합니까, 한국교회가 망한다 말하며 얼마나 전전긍긍합니까?
예수님이 어떠셨습니까? 성령을 운행하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실 ‘하나님’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당시에 자신은 가장 처참하게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 당신의 육체의 연약함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겸손을 보이셨습니다. 육체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겸손을 계획하사, 예수님의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 순종을 보시고,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십니다. 성령을 기대하신 예수님의 눈에는, 이스라엘의 교회가 망했다, 예루살렘이 망했다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당신을 기대한다고 하면서, 조급하고 괴로워하는 당신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위해 심는다는 것은, 나는 겸손히 죽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한절만큼도 하나님의 쓰임을 받지 못하였더라도, 그냥 평범한 인생중에 끝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때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 세상을 이미 승리한 승리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미 승리한 세상에서 안절부절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렇게 성령을 위하여 그리스도안에서 평안을 누릴 때에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이미 승리한 것을 아십시오, 한국교회가 무너졌다, 세상이 혼탁해졌다 걱정을 마십시오. 걱정하는 시간만큼 기도를 하면 이 세상에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으십시오. 아버지와 교제하는 우리는 이미 승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