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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건전한 죄의식에서 가증한 죄의식으로

불건전한 죄의식에서 가증한 죄의식으로

40그들이 광야에서 그에게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가

시편 78편 40절

현대의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집중력에 심각한 장애가 있습니다. 세상의 임금인 마귀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을 세속화 시키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나안을 주셔서, 가나안을 하나님 나라화 시키기를 원하셨으나, 도리어 우리가 ‘가나안화’된 것입니다. ‘가나안화’된 우리의 죄에 대한 인식은 처음엔 불건전했다가, 점점 가증해지는 쪽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불건전한 죄의식은 나의 죄가 하나님을 슬프게 해드린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 죄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슬프게 해드린다는 사실에서 회개가 이루어지지만,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회개라고 생각하는 죄의식은 후회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의 죄의식은 ‘죄가 나를 아프게 했다’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범죄를 회개하는 모습은, 사실 그 범죄로 인하여 ‘내가 아프게 될까봐’ 걱정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것이 왜 ‘반복’됐습니까? 그것은 회개가 아니라 후회였기 때문입니다. 범죄가 나를 아프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그 결과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하나님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 중에 우리의 범죄가 하나님께 드리게 되는 마음의 고통은 생각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불건전하고 이기적인 죄에 대한 인식은, 반복되다보면 발전하여 역겹고 가증한 죄 인식, 하나님 인식으로 발전합니다.

‘호구 하나 물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장사하는 자가 바가지가격에 상품을 올렸는데, 좋다고 속아주며 그 가격에 잘 사가는 손님을 만났을 때 사기꾼이 속으로 하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호구 하나 물었다’ 수준의 구원 인식에 거하고 있습니다. 내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바가지 가격에 물건을 잘 사가는 순진한 손님처럼 항상 뒤처리를 해주시는구나, 거의 ‘화장실 휴지나 비데와 같아’ 라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그런 모독적인 언사를 마음으로도 입술로도 하지 않았어’라고 자긍하지는 않으십니까?

3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시편 19편 3절

성경에서는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음성을 전한다 했듯이, 우리도 ‘언어도 말씀도 소리도’ 없으나 우리의 행동이 하나님께는 우리의 음성과 같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행동이 실제적으로 하나님께 어떤 가증한 신앙고백을 했는지 뒤돌아봐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호구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자녀의 권세는 너무나 즐거워서 내가 어떤 죄를 반복해서 짓든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마치 비데와 휴지와 같아 라고 자기식대로 생각하는 가증한 죄의식은 도대체 무엇을 모르기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까지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죄지은 것으로 슬퍼하는 것에서만 머무르지 않으시고, ‘노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생각대로 마냥 감상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곧 우리의 반복된 범죄를 향하여 화를 내실 것입니다. 누가 그것을 감당하겠습니까?

41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시편 78편 4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