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요나는 성읍에서 나가 성읍 동쪽에 앉았다. 그는 그곳에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려고 했다. 6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준비하셔서 요나 위로 자라게 하셨다. 그것이 그의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어 그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나는 그 박넝쿨 때문에 크게 기뻐했다. 7다음 날 새벽 하나님께서 벌레를 준비하셨고, 벌레가 박넝쿨을 갉아 먹자 그것이 말라 버렸다.
요나 4장 5-7절
이 짧은 한 순간의 장면은, 어떤 그리스도인에게는 아주 긴 인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장면일 수 있습니다. 요나가 자기를 위하고 있을 때, 하나님도 요나를 위하여 박넝쿨을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주셨던 박넝쿨은 벌레 먹게 하여 시들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자기를 위할 때,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신 것은 박넝쿨처럼 예비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형통은, 우리가 자기를 위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훈계의 수단이 될 것입니다. 벌레 먹게 하시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기뻐하며 살았는지를 나타내는 표징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박넝쿨이 시들 때, 순간적으로 매우 성낼 것입니다. 정신을 놓고 자신이 하나님 앞인지 뒤인지 분간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내가 기뻐하던 일이 잘 안 풀리는 상황일 수 있으며, 내가 기뻐하던 사람이 나를 서운하게 하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의지했든, 의지하던 모든 것은 반드시 주님으로 인하여 훈계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자신을 위하여 초막을 짓고 하나님과 합하지 않은 마음인가요? 그렇다면 주변의 어떤 것이 박넝쿨처럼 벌레에 먹힐지 모릅니다.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서 감사함으로 받지 않고, 이기심으로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치우친다면, 사랑하는 사람도, 든든한 직업도, 기뻐하던 취미도 모두 다 벌레 먹히는 박넝쿨이 되어 당신이 성내는 것을 드러내어 부끄럽게 하실 것입니다.
4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 4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