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잠언 13장 1절
부모가 자녀를 훈계할 때, 부모는 그 자리에서 자녀가 즉시 완전히 변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부모는 이미 압니다. 자녀가 또 실수하고, 또 반복하고, 또 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요. 부모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훈계를 듣는 그 순간의 태도, 그리고 그 자리에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마음을 낮춰 뉘우치는 모습입니다. 그 정도의 진심만 있어도 부모는 기뻐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 부모보다 훨씬 더 크고 깊은 은혜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사람의 부모는 자녀가 계속 번복하면 실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까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듣고 애써 지키려다가 실패하고 번복할 때에도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말씀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 깨달음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함을 배우게 하십니다.
우리가 의지로 말씀을 지키기 시작할 때, 처음에는 그것을 ‘내 힘’으로 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깨닫게 됩니다.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자신의 죄를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친밀함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의 역사입니다.
반대로, 말씀을 지키는 행위가 자기의(義)가 되기 시작하면 마음 안에서 감추고 싶은 죄들이 생깁니다. 사람에게는 드러내기 싫고, 하나님께조차 말하기 싫은 꺼림칙한 죄들이 생기며,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는 병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을 지키려 할 때 반복하는 모든 실수와 패배를 이미 아십니다. 그래서 더욱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작은 죄라도 그 자리에서 정직하게 자백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완벽한 실천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한 마음입니다.
저는 얼마 전 한 게임에 빠져 심각할 정도로 중독되었습니다. 멈추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중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이 마음 깊이 들어왔습니다. ‘형상’을 섬기지 말라 하신 말씀이 제 마음을 찌르며, 게임 역시 형상을 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저는 게임을 끊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제 삶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시간을 빼앗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하시며, 제 의지와 상관없이 게임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저는 노력하지도 않았고, 다짐하지도 않았는데, ‘중독’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저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라” 하셨을 때, 그 말씀이 병을 고쳤습니다. 그 말씀 자체가 능력이었습니다. 오늘도 같은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잘못을 반복하며 마음 아파할 때에도, 성경을 멀리하지 않고 말씀의 자리에 머물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말씀은 우리가 애써 세워 올리는 의지의 결과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스스로 능력을 발휘하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듣고, 다시 마음을 열고,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기 위해 성령으로 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려고 하면 짐이 되고 정죄가 찾아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면, 우리는 죽고 예수님이 살아 움직이십니다. 그때 비로소 말씀은 능력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