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애굽기 19장 5절
26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
레위기 20장 26절
이 두 구절에 기록된 ‘소유’의 원어는 서로 다릅니다.
출애굽기에서의 ‘소유’는 ‘쎄굴라(סְגֻלָּה)’, 즉 하나님이 비밀히 간직하신 보물, 특별히 구별된 소유를 의미합니다.
반면, 레위기에서의 ‘소유’는 ‘하야(הָיָה)’,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거처로 삼으시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두 말씀을 함께 묵상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자신의 소유로 삼으셨을 뿐 아니라, 우리 또한 하나님을 우리의 소유로 삼게 되는 신비로운 연합의 관계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분명히 설명하셨습니다.
20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14장 20절
우리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이 말씀은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며, 돌같은 마음을 살같은 마음으로 변화시켜 자기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주님이 나의 죄책을 담당하셨다는 것이 진심으로 믿어지기 위해서는 기도와 말씀 속에서 그 의미를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죄책을 담당하셨다는 것은 단지 용서를 받았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의를 사랑하도록 돕고, 죄를 미워하도록 이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리를 그렇게 섬기고 계십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섬김을 구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요구할 뿐, 주님이 원하시는 나의 모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결과, 주님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필요를 들어주는 심부름꾼처럼 여기는 신앙에 머물고 맙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이 원하시는 내 모습은 어떤 것인가?”를 날마다 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믿어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신앙은 결국 자기중심적인 삶의 전복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판단, 나의 의로움, 나의 옳음이 하나님 앞에서 무너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손해를 감수하기 싫어하기 때문에, 주님의 뜻을 알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그 순간, 우리는 주님께 기도하게 되고, 그제야 말씀의 깨달음이 임하게 됩니다.
끝까지 구하지 않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의 육신을 신으로 삼아 먹고 마시며 영혼의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방임한 채, 믿음의 기회를 스스로 거절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이 결국 맞이할 결말은 비참함일 뿐입니다.
믿는 성도는 그와 반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자는 오히려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자신 안에 주님을 근심하게 할 것이 있지 않은가를 날마다 점검합니다. 그러한 겸손한 두려움이야말로 하나님의 소유된 자의 특징입니다.
생각 없이 사는 안일함이 주는 평안은 잠시뿐입니다. 그러나 몸부림치며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날마다 확인하는 사람은 영원한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