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잠언 19장 17절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애굽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생활이란, 하나님이 허락하신 소유에 대해 그 사용의 권한까지도 자신이 쥐고 있는 삶을 말합니다.
자신의 소유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용하는 것, 이것이 애굽의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살피시는 아버지의 권리를 빼앗고,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재물을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보다 강합니까?
우리 뜻대로, 우리 소유를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정말 하나님보다 힘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경적 무지와 믿음 없음을 오래 참으시고 계신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주신 것에 대한 아버지의 권리를 주장하십니다.
그분은 자녀가 자신의 뜻대로 재물을 사용하기보다, 아버지의 뜻대로 재물을 다루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녀들에게 조금씩 재물의 사용처를 보여주시며, 훈련의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건 내 필요를 위해 남겨둔 돈인데…”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빼앗긴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고려하셔서, 그것을 투자이자 신뢰의 고백으로 바꿔주십니다.
우리의 소유를 사용하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은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자 중심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11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누가복음 16장 11절
가장 작은 것, 즉 재물에 순종하지 않는데 하나님께서 더 큰 일을 맡기시겠습니까?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것을 빼앗으려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버지와의 신뢰를 깊게 하시려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소유의 사용권한을 아버지께 드리고, 필요를 채울 권리 또한 아버지께 이양할 때, 그분과의 동행 속에 경제적 신뢰 관계가 형성됩니다.
아무에게나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재물을 사용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 분별력을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경제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