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폰트 크기
보통 16px
헛수고

헛수고

25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고기를 피째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에스겔 33장 25절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로 있을 때,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자들은 범죄하면서도 “이 성읍은 우리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죄는 우상에게 눈을 들고 피를 흘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단지 타인의 피를 흘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기 뜻과 계획을 위해 애쓰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길을 이루어주실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피를 쏟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께 진정 순종하지 않는 모든 인생은 결국 자기 피로 살아갑니다. 열정으로, 근심으로, 경쟁으로, 자기 자신을 쥐어짜며 살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아름답고 의욕적이지만, 그 내면을 보면 참으로 애처로운 인생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꾸미고, 자신을 바치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게 모든 것을 내어줍니다.
회사일, 명예, 돈, 혹은 사람—이름만 다를 뿐,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대상들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들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 소비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라면 이 말을 듣고 반드시 자각하게 됩니다.
사랑받는 줄 알았던 기억들이 사실은 소비된 기억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공허했던 마음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갈 때, 진정한 만족을 누려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음을 직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육신의 열정을 자랑하며, 탐심에 취해 살아갑니다.
서로의 착각을 진리라 부르며, 자기들끼리의 연합과 담론 속에 스스로 위로받습니다.
그들의 삶은 거짓 위에 세워진 순진한 교만입니다.
진정한 성도는 이런 인생들을 향해, 단순한 연민이 아닌 거룩한 두려움을 느껴야 합니다.

극한 방탕 속에서도 아무런 긴장이나 죄책이 없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모든 노동과 열심은, 주님의 눈에 극한 방탕이요, 살인이요, 도둑질이요, 헛수고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주시려던 사랑의 자리를 도둑질하고, 그분의 권리를 빼앗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려 만든 마음의 빈자리를, 세상의 열정으로 메워보려는 무력한 헛수고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1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사야 55장 1-2절

주님이 주시는 생수와 말씀으로만 진정한 만족이 있습니다.
그분을 향하지 않는 모든 열심은, 결국 자기 피를 쏟는 헛수고일 뿐입니다.
진정한 쉼은 오직 주님의 품 안에서만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