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3장 12절
한글 성경에는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라고 되어 있으나, 올바르게 번역하면 ‘기도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타인의 범죄로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상처받고, 충격받으며, 비난하는 마음도 생기고, 혼란스러운 마음도 생깁니다. 우리는 자동으로 우리 자신부터 챙기게 됩니다. 그러나 범죄자를 향한 주님의 심정을 헤아리려, 자기중심적인 마음의 반응들을 잠시 견디다 보면, 주님을 마주하게됩니다. 주님은 범죄자를 향한 우리를 향해서도, 또한 범죄자를 향해서도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 보기에 범죄한 사람은 괘씸한 사람입니다. 왜냐면 일시적으로라도 우리에게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손실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 보시기에는 범죄한 사람의 괘씸한 여부부터 보시지 않는 것 같습니다. 범죄자는 주님께 아픈 손가락입니다. 어떻게든 건져주고 싶은, 자신의 죄에 폭력을 당하는 주님의 피조물입니다.
23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에스겔 18장 23절
주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쉽게 말하기를, 응당 그가 벌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주님은 사람들의 죄로 말미암는 형벌을 친히 담당하시려 하나님이시면서도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가 함께 범죄자를 향해 슬퍼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우리는 너무나 자기가 받은 부정적인 영향에 집중하고 골몰해 있습니다.
주님이 받으신 부정적인 타격을 생각합니다. 주님은 정신적인 충격만 받지 않으시고, 찔리시고 못박히셨는데도 불구하고 죄인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향하여도 아버지께 이르기를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였습니다.
먼저는 주님의 긍휼을 우리가 많이 묵상해야겠으나, 그럼에도 주님의 명백한 기준을 놓치지 말아야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은 범죄자를 불쌍히 여기시나, 죄에서 돌이켜야 살 수 있다는 것도 아십니다.
처음엔 범죄한 자로 상처받은 자신에게 집중하겠지만, 다음엔 그를 향한 주님의 긍휼을 경험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론 범죄한 자에게 줘야할 명확한 기준의 올바른 처방을 직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처받을 때, 우리는 범죄가 개인만의 일이 아니라 이웃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범죄자를 향한 주님의 긍휼을 경험할 때 주님이 어느 누구나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알며, 범죄한 자를 막연하게 용납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를 바라시는 하나님을 볼 때 죄를 버리는 것이 받은 긍휼을 향한 올바른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효력 있는 중보기도의 유일한 주체이신 예수님 덕분에 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