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에베소서 5장 3절
나라에 건전한 도리가 있더라도,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 허락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미디어입니다. 극장에서, 안방에서, 내 손에 이르기까지 환한 화면으로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둔갑시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굶어도 죽지 않습니다. 간혹 미디어 금식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아닙니다.
말씀을 묵상할 때, 그것이 우리 마음에 새겨지고 남아 있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여가 시간을 빙자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영상 매체입니다. 살인, 성적 음란, 마약, 먹방과 같은 식탐을 조장하는 방송 등, 온갖 탐욕들을 단순한 ‘눈요깃거리’ 정도로 가볍게 여기도록 사람들의 주의를 끕니다. 우리는 이미 그것에 크게 정복된 상태입니다.
눈과 귀, 마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가나안을 정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성도들의 마음은 사사기의 한가운데 있는 듯 세상의 이방문화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묵상을 하는 자들조차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묵상하기보다는, 영화나 평소 즐겨보는 프로그램, 혹은 가요를 통해 떠오르는 생각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가 있을 정도입니다.
많은 미디어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그 뿌리가 인문학에 있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은 사람을 이해하는 학문이지만, 결국 사람의 만족을 위해 존재합니다. 성도인 우리의 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를 만족시키는 자들입니까?
우리는 분명히 다른 복음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광명한 천사’는 오늘날 우리 눈과 귀를 사로잡아 중독시키는 미디어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설교를 듣고서 아이들을 영화관으로 데려가는 교사들은 아이들을 실족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말씀을 읽고 나서 급히 텔레비전을 켜는 자들은 말씀을 길가에 뿌린 것과 같습니다.
에베소서 5장 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