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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지 왜곡

발원지 왜곡

34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35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잠언 3장 34-35절

거만하고 교만하면 미련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련을 숨긴 채 고상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미련함’은 사람의 눈으로는 분간하기 어려운 미련이며, 당사자와 하나님만 아시는 영역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을 부인하는 개인의 은밀한 지점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복음을 증거하며 올바른 설교와 묵상을 베풀더라도, 사역자는 마음 깊은 곳에서 발원지를 왜곡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서 나오는 지혜와 아름다움이 곧 칭찬받을 근거라고 오해하고, 입술로는 주님을 높이되 속으로는 자신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둘 수 있습니다.

이러한 왜곡은 외적인 완결감으로 자신도 속게 만듭니다.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길 만큼 외형이 정돈되어 있더라도,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보려는 진지한 시도가 없다면 정작 씻어야 할 더러움은 남게 됩니다. 교만과 거만과 미련함이 이처럼 오묘한 이유는, 심지어 미련함이 ‘영달’로 포장되어 칭찬과 높임을 받는 함정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성실하신 징계에 겸허히 응답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징계를 통해 자동으로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교만과 거만과 미련함, 그리고 높임을 받는 위선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대중 앞에서 고상함으로 높임을 받은 시간과 비례할 만큼 아무도 모르게 자신을 감추고 기도로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성경이 주님의 기도 생활을 크게 강조하고 본받도록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역자는 가시적인 사역을 피할 수 없습니다. 고상함과 높임과 존경과 칭찬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교묘히 숨은 교만과 거만과 미련함은 지워야 합니다. 그것은 사활을 건 기도로, 오직 하나님의 평가에 자신을 맡기며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에만 무게를 두는 태도로 가능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면, 사람들로부터의 칭찬과 높임은 영향력을 잃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를 하나님께 받는 겸손이며, 영광을 하나님께로부터 기업으로 받는 지혜입니다.

거만과 교만과 미련함은 사역의 발원지를 자신으로 돌리고, 마음의 만족의 발원지도 사람에게서 온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왜곡입니다. 반대로 겸손과 지혜는 사역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며, 마음의 만족이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 줍니다. 성도의 건강과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겸손과 지혜는 숨어 기도하는 기도 그 자체입니다.

20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21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유다서 1장 20-21절

교만과 거만이 만들어 내는 발원지 왜곡을 경계하며, 사역과 만족의 근원을 사람과 자신에게 돌리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 앞에 자신을 숨겨 두는 겸손과 지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