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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아들

15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고린도전서 4장 15절

일만 스승을 아버지로 만드는 방법은, 제자가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도제관계는 기능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기능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잘 하는 사람’을 찾지 않으시고, ‘아들로 자라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스승이 완벽하지 않다 해도, 그들을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스승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시대일수록, 제자된 우리가 먼저 아들 되어야 합니다. 스승이 아버지가 되지 못하는 이유보다, 제자가 아들이 되지 않으려는 이유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관계는 기능적인 도제관계가 아니라 인격적인 부자관계입니다. 신앙생활이 ‘맹목적 헌신’으로만 이어질 때, 그것은 점차 종교적인 껍데기로 변합니다. 기능은 남지만 사랑은 사라지고, 순종은 남지만 교감은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그런 종교인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사람의 아들로 살아가지 않으셨다면, 인류를 위해 희생하신 일은 너무도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울며, 우리의 아픔을 체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아들로서 사람들을 섬기셨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셨고, 동시에 자녀들의 연약함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완전한 사랑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아들로 살기 전에 사람의 아들로 살아가는 것을 경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으로만 사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능력의 표본으로만 이해할 때, 정작 ‘아들됨’을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에게, 아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주시려는 사랑의 통로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아들이셨고, 동시에 아들의 마음을 아는 아버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스승은 많으나, 아버지 같은 스승이 없다고 불평할 때가 아닙니다.
이제 제자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아들로서, 또 사람의 아들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세상은 ‘아버지의 사랑’을 보게 될 것입니다.

21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