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장 25절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는 말은, 각자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확신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을 변호할 만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 논리는 점점 더 정교해져 갔습니다.
하나님은 자유로우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손으로 움켜쥘 수 없고, 우리의 생각으로 가둘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판단을 정당화하려는 욕망 속에서 하나님마저 자신의 논리에 가두려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도,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을 변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변호 도구가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을 변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 않으셨고, 대신 아버지의 뜻이 온전히 드러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뜻은 오직 하나 심판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데 익숙합니다. 말씀을 근거로 삼아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며, 결국 하나님을 자기와 동일시합니다. 그리하여 각자 스스로 작은 심판자가 되어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아가는 사람은 판단의 권리를 하나님께 드린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이를 향해 자의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오히려 타인을 하나님처럼 존중하고 섬기려는 영적 분투 속에서 살아갑니다.
입으로는 서로에게 친절을 베푸는 듯하지만, 속에는 일곱 가지 가증한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지식으로 만든 가시면류관을 예수님께 씌우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진리를 수호하고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변호할 권리를 내려놓는 일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을 변호할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관용으로, 화평으로, 양순함으로, 충성으로.
우리의 믿음은 말이 아니라 능력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억울한 일에 대해 조급히 항변하기보다, 우리를 위해 변호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인내가 성숙한 믿음의 증거가 됩니다.
18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4장 18-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