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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도 없는 자식

근본도 없는 자식

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4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장 3-4절

구약시대에 혼합주의가 성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당시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이 주변 우상들을 섬기는 가르침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알신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와도, “아, 이방에서는 우리 하나님을 바알이라 하나보다”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바알이라 하고 바알을 하나님이라 할 민족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정말로 바알을 섬겨서 혼내신 경우가 아닐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바알처럼 섬기기 때문에 혼이 나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숭배와 다를 바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세상으로 하여금 우리가 근본도 없다는 소리를 듣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꾸 내 눈으로 상황을 보고 미래를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고 행하는 것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생각은 우리의 이해 범주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을 금과 은보다 더 귀하게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동행하심을 알지 못하고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것 외에 다를 게 없습니다. 단지 그 위에 고춧가루처럼 ‘예수 믿는다’는 말만 뿌려놓은 것입니다.

믿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세상이 주는 염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급여를 지급하는 사람을 하나님으로 여기며, 최신 뉴스와 경제 이야기를 복음처럼 받아들입니다. 진짜 생명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시간에 주어지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5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6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히브리서 13장 5-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