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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필요한 관계

낭만이 필요한 관계

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8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육체를 위한 삶이 아니라, 성령과의 관계를 위한 삶으로 인도하실 때, 우리의 계산과 생각에 부합하지 않는 말씀들로 이끄시는 이유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부드러움과 사랑을 때를 따라 경험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랑이 더 뜨거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하늘 평안이 있는 가시적인 불안 속으로 ‘신뢰’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곳에 감격이 있고, 채우심이 있고, 주시는 상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과 현실을 구분하여 하나님과의 낭만, 즉 로맨틱을 놓쳐버립니다. “예배는 예배고 삶은 삶이지.” 이러한 마음이 얼마나 사랑을 식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애쓰는 일들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둔감하게 만드는지요. 내려놓지 못하는 재물의 유혹과 세상 염려들이 우리를 얼마나 무뚝뚝하게 만드는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때로 감당할 만한 위험을 감수하게 하십니다. 단지 우리가 “하나님께는 원하시는 때, 원하시는 방법, 원하시는 것이 있다”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기’를 원하십니다.

불신앙이라고 느끼기 어려운 많은 생각과 습관들이 사실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이고, 결국 우리 서로의 관계도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삶에 허덕이는 모습은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요구하시는 삶이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이것은 마치
“다 먹이고 다 입혀줄게, 나만 믿어.”
라고 고백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을 좇아가면, 하나님이 주시려던 아름다운 시기를 놓쳐버립니다.

세월을 주님께 붙들려야 합니다.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면,
“왜 아름다웠던 때를 주님께 드리지 못했을까?”
“왜 아름다웠던 때 서로 사랑하지 못했을까?”
깊이 속상해하게 됩니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외롭게 해드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가졌다는 안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녀의 권세를 알아가고 누리셔야 합니다.
그 안에 세상을 이길 사랑이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가족 안에서, 말씀에 부합한 사랑을 요청하십시오.
삶에 끌려다니지 말고
“함께 예수님을 사랑하자”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회복될 때, 어린 날의 아름다운 추억처럼 가슴 깊이 새겨지는 낭만적 사랑이 다시 도장처럼 우리 마음에 찍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셨을 때, 그들은 세상 염려를 했습니까?
자기 생계를 걱정했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걸었을 뿐입니다.

가시적인 불안 속에서 내면의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의 따뜻한 손을 잡고 속삭이며 걸어가는 시간들이 없다면, 우리는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 속에서 마치 기계 속 톱니바퀴처럼 살아가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죄악에 넘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었던, 누려야 했던 사랑의 온도가 식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배고파도 먹기 싫을 정도로 식어버린 것입니다.

따뜻했던 첫사랑을 회복하십시오.
식어버린 사랑은 뜨거운 죄보다 못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